케냐에 울린 희망의 도라지타령

  • 입력 2007년 6월 4일 02시 59분


아프리카 케냐의 빈민가에서 활동하는 성악가 김재창 씨(가운데)와 지라니 어린이합창단 단원들. 아이들의 환한 웃음 속에 희망과 꿈이 영글고 있다. 사진 제공 굿네이버스 케냐지부
아프리카 케냐의 빈민가에서 활동하는 성악가 김재창 씨(가운데)와 지라니 어린이합창단 단원들. 아이들의 환한 웃음 속에 희망과 꿈이 영글고 있다. 사진 제공 굿네이버스 케냐지부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6월 1일 오후(한국 시간 1일 밤)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의 대통령궁에서 한국 민요 ‘도라지타령’이 은은히 울려 퍼졌다. 이날은 자치정부수립 기념일로 케냐 최대의 경축일.

나이로비 빈민가 아이들로 구성된 지라니 어린이합창단은 이날 므와이 키바키 대통령 부부와 각국 대사, 유엔 관계자 등 케냐의 내외 귀빈 5000여 명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참석자들은 슬럼 지역 아이들의 해맑고 당당한 모습과 아름다운 노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준 이날 공연에는 한 한국인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다.

주인공은 중견 성악가 바리톤 김재창(51) 씨. 김 씨는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의 지원으로 지난해 7월부터 나이로비 고로고초(스와힐리어로 쓰레기장) 지역에서 지라니 어린이합창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로고초는 가난한 나라 케냐에서도 빈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 각종 범죄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이 창궐한 곳이다.

“이곳은 50세를 넘기기 힘든 곳입니다. 아이들은 학교는커녕 하루 1끼로 연명합니다.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돼지와 함께 음식을 찾고 있죠. 희망, 꿈 이런 단어들은 없습니다.”

악보를 처음 보는 아이들이었지만 배움의 속도는 놀라웠다. 케냐 국립극장에서의 창단 공연, 주케냐 네덜란드대사관의 기념 공연 등에 이어 마침내 케냐 대통령 앞에서 공연할 정도로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이었는데도 실력은 쑥쑥 자랐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아이들다워진 것에서 그는 희망을 봤다. 초점 없는 눈, 움츠린 어깨, 작은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졌다. 음악을 통해 꿈과 희망이 아이들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

김 씨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살아도 어린이의 가능성은 무한하다”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에 서는’ 모습을 꿈꾼다”고 말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12월 한국 공연. 김 씨는 “한국 공연이 성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최대 목표는 유엔 공식 무대에 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폴리 존타 콩쿠르, 벨리니 콩쿠르, 리골레토 콩쿠르 등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잇달아 우승하고, 국내에서도 대형 오페라의 주연을 맡아 온 저명한 성악가다.

이헌진 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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