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1인당 총기 1정 꼴 소지… 무차별 난사 속수무책

  • 입력 2007년 4월 17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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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까지 무고한 시민들이 스스로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무장한 정신이상자의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야 하는가."

16일 버니지아텍에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국사회의 해묵은 숙제를 이번 참사를 계기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못하다. 이날 본보와 인터뷰한 미국 전문가들은 일정한 규제 강화는 몰라도 총기소유를 허용한 미국 헌법 조항 자체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1인당 1정 꼴 총기 보유, 높아지는 반대 = 미국에선 그동안 중고교를 비롯한 학교 내 총기사고, 어린아이가 집안에 있던 총을 잘못 만지다가 발생한 사고 등이 끊이지 않았다. 워싱턴 뉴욕 보스턴 등 동북부 대도시에선 총기 소유 반대가 높지만 텍사스 주(州) 등 남부로 갈수록 총기 소유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정서가 강하고 총기 소유 비율도 훨씬 높다. 많은 주에서 술을 사는 것보다 총기를 사는 것이 쉬울 정도다. 최근에는 사냥을 취미로 갖는 미국인들이 늘면서 총기 소지자들이 더욱 느는 추세다.

미국에서 개인이나 가정에서 보유하고 있는 총기는 2002년 기준으로 대략 2억5000만 정. 실제로 대도시 중산층 이상 계층에서 총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숫자로만 본다면 거의 인구 1인당 1정 꼴이다.

조지타운대 경영대학 데이비드 워커 교수는 "미국의 어느 학교든 이번 버지니아텍과 같은 무차별 폭력에 취약한 상태"라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는 17일자 사설에서 "이번 사건은 미국인들이 어디서든 경악할 만큼 손쉽게 무기를 구할 수 있는 살인마로부터 당할 수 있다는 심각한 위험을 일깨워주는 참사"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도대체 어떻게 무장괴한이 그렇게 손쉽게 대학 구내에서 학살을 자행할 수 있었는가"라고 개탄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총기 소유와 그 배경 = 미국 수정 헌법 2조 '무기 휴대의 권리' 조항은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전문가인 조지타운대 법대 피터 버니 교수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광활한 땅을 개척해 정착해야 했던 미국에선 총기 소유는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명, 그리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권리로 간주돼 왔다"며 "이에는 국가가 개인을 온전히 보호해줄 수 없다는 관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물론 총기소유를 불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총기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돼 왔다. 특히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저격 사건으로 하반신 불구가 된 짐 브래드 당시 대통령 대변인의 부인이 주도해 만들어진 1994년 브래디법에 따라 총기 취득 신청에서 허가까지 일정한 기간을 두고 심사를 하는 등 규제가 강화됐다. 하지만 상당수 남부 지역 주들은 이를 따르지 않는다.

버니 교수는 "버지니아주는 총기관리에 대한 규제도 매우 느슨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버지니아텍이 있는 블랙스버그는 버지니아주 남부로서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지역이었다. 총기만행 예방 시민단체인 '브래디 캠페인'이 A~F로 총기관리 성적을 매긴 것에 따르면 버지니아 주는 'C-'에 해당할 정도로 규제가 느슨하다. 주 또는 연방 당국의 전과 조회를 통과하기만 하면 18세 이상 누구나 총기를 포함한 화기를 구입할 수 있다. 굳이 총기소지 허가가 없더라도 권총 1정을 구입할 수 있다.

재미 한국인 학자인 조지 워싱턴대 박윤식 교수는 "대도시를 벗어나 교외에서 각자가 넓은 땅에 집을 짓고 사는 미국인들에게 총기 소유는 너무 당연한 권리로 여겨진다"며 "규제 강화는 몰라도 헌법 개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익단체의 로비도 한 몫 = 총기 보유에 대한 제한이 이뤄지지 않은 것과 관련 전국총기협회(NRA)의 로비를 지적하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빌 클린턴 행정부는 총기소지연령 상향 조정 등 총기규제 입법화에 나섰지만 NRA가 엄청난 돈을 쓰면서 반대 로비에 나서서 성사되지 못했다.

NRA는 450만명의 회원과 막대한 로비자금을 무기로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대형 총기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될 때마다 막대한 로비자금을 써가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우호적인 세력 확보에 주력한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뉴욕=공종식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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