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를 하라” 中 소학교 교장과 원자바오 총리

  • 입력 2007년 3월 19일 21시 46분


"어제 오후 초등학생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바빴지만 아이들에게 답장을 썼습니다. 튼튼하게 자라라고 격려했습니다."

16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폐막 직후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국무원 총리는 내외신 기자와의 회견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초등학생의 편지' 얘기를 꺼냈다.

원 총리는 편지의 전달 경위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 초등학생에게 답장을 한 총리의 마음 씀씀이에 13억 중국인은 감동을 받았다.

10년 넘게 허름한 단벌 잠바로 농촌을 시찰하고 몇 년째 운동화를 기우며 신는 원 총리를 기억하는 중국인들이 '평민 총리'의 온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중국 언론의 추적 결과 편지는 장시 성의 간저우 시 빈장 제2초등학교에서 보낸 엽서였다.

'경애하는 원자바오 할아버지께'로 시작하는 엽서는 그러나 초등학생의 글이라고 믿기 어려운 구석이 많았다.

"…2007년 우리는 학교 잡비를 면제받는 우대정책을 누렸습니다. 생계가 곤란한 186가구 학생은 정부의 무료 교과서를 받았습니다. 정말로 아빠 엄마의 부담을 줄였습니다. '사회주의 대(大)가정'의 따뜻함과 사회의 사랑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우대정책'이나 '사회주의 대가정'은 일반 서민들이 잘 쓰지 않는 중국 관리들의 상투어다. 또 글씨체만 어린이 것일 뿐 225자로 된 글은 조리 있고 간결하다.

원 총리에게 편지를 전달한 이 학교 류옌치옹(劉艶瓊·여·전국인대 대표) 교장은 뒤늦게 "편지는 학생과 선생이 공동으로 썼다"고 실토했다.

원 총리에게 감사를 표시한 이유 역시 석연치 않다. 학생들이 감격했다는 잡비 면제는 중국 정부가 지난해 서부지역 농촌부터 시작해 올해 전국 농촌으로 확대한 행정조치다.

도시에 있는 이 학교가 혜택을 받은 이유는 장시 성 정부가 올해 성 전 지역을 대상으로 잡비 면제를 실시키로 했기 때문이다. 먼저 감사해야 할 대상은 장시 성 정부인 셈이다.

중국 언론은 4일째 초등학생의 편지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주요 매체의 보도만 이미 400개가 넘었다. 이 바람에 류 교장은 인터뷰를 하느라 연일 눈 코 뜰 새 없을 정도다. 류 교장과 원 총리 모두 '정치 쇼'의 효과를 크게 누리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하종대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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