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도시 워싱턴에 밀릴수야” 지성의 보스턴 뭉친다

  • 입력 2007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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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도시끼리 경쟁 관계가 있다면 뉴욕과 보스턴을 우선 떠올리는 이가 많다.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100년 맞수이듯 ‘내가 최고’라는 두 동부 해안도시의 자존심 대결은 늘 화제다. 그러나 최근 ‘지성의 수도’로 통하는 보스턴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도시는 뉴욕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행정 정치 외교의 수도이지만 ‘고급문화의 사각지대’로 멸시받아온 워싱턴이다. 지난 2년간 보스턴을 떠났거나, 새롭게 태어난 두 잡지는 ‘지성의 수도’로 통하는 보스턴의 상처받은 자존심과 ‘그래도 아직은’이란 자부심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워싱턴으로? 난 못 가=올해로 창간 150년을 맞은 ‘애틀랜틱 먼슬리’는 미국 지성사의 산증인 같은 잡지다. 보스턴에서 창간된 뒤 마크 트웨인, 너대니얼 호손 등 쟁쟁한 작가가 이 잡지를 거쳐 갔다.

2005년 여름 이 잡지는 본사를 수도 워싱턴으로 옮겼다. 발행부수가 한때 43만 부(현재는 48만 부)로 떨어지면서 매년 60억 원 안팎의 적자를 내던 시절이었다. 1999년 잡지사를 인수한 새 경영자 데이비드 브래들리 씨는 당시 “보스턴의 임차료가 너무 비싸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뉴욕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임차료 절약분은 월 2억∼3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워싱턴에서 새로운 담론 형성 과정을 주도해야 한다”고 워싱턴 이주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 잡지는 환경 노동 자본주의라는 주제를 놓고 ‘고급스러운 진보주의’로 인기를 끌어왔다. 이 때문에 이 잡지에는 석유자본 농업재벌 제약회사 등 민주당의 주요 비판대상 기업들이 ‘(우리는) 환경을 중시한다’ ‘세계의 굶주림을 없애는 데 기여한다’ ‘생명을 이렇게 보호한다’는 등의 반론(反論)성 광고를 심심찮게 게재한다.

이 잡지 본사의 워싱턴 이전을 둘러싸고 40여 명의 편집기자와 사원은 “보스턴을 떠날 수 없다”고 버텼다. 실제로 다수의 기자와 편집자가 보스턴 체류를 위해 회사를 떠났다.

‘애틀랜틱 먼슬리’의 워싱턴 이전은 2004년 대통령선거를 전후로 워싱턴이 낙태 동성애 이라크전쟁이라는 첨예한 쟁점을 놓고 진보와 보수의 이데올로기 경합장으로 바뀐 것과 무관치 않다.

뉴욕타임스는 150년 전통의 잡지사가 보스턴을 떠난 이유로 “워싱턴에 있어야 논쟁의 흐름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하던 인터넷 매체 ‘슬레이트(Slate)’도 또 하나의 진보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본사를 2005년 워싱턴으로 옮겼다.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매각되는 형식이었다.

▽“보스턴이라야 팔린다”=보스턴의 상실감은 외곽 소도시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하버드대가 일부 되찾아줬다.

‘02138’이란 이름의 격월간지가 2005년 말 보스턴에서 창간됐다. 하버드의, 하버드에 의한, 하버드를 위한 잡지였다. 창간 목적에도 “교육 수준 높고, 돈 많고, 영향력 큰 하버드 사람들을 위한 잡지”라고 적혀 있을 정도다.

‘02138’은 하버드대의 우편번호다. 우편번호 자체가 제목으로 쓰이면서 상업적 가치를 갖게 된 것은 TV 드라마 ‘베벌리힐스 90210’ 이후 두 번째.

첫 회부터 하버드를 빛낸, 그리고 먹칠을 한 졸업생 100인을 선정했다. 민주당의 스타로 떠오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도 등장했고, 최대 회계부정사건을 일으킨 엔론사의 제프 스킬링 사장도 하버드 출신이었다.

하버드 졸업생 부부를 다룬 파워 커플, 새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졸업생, 새로 선출된 첫 여성총장 이야기가 기사로 다뤄져 왔다.

13일 인터넷판에서는 사무기업체인 제록스 CEO 출신인 한 동문의 부음, 하버드 졸업생 커플의 결혼 소식, 지구촌 언론에 등장한 졸업생의 소식 등이 담겨 있다. 등장인물의 이름 뒤에는 ‘법과대학원 1982년 졸업(J.D. '82) 같은 식의 동문 꼬리표가 어김없이 따라붙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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