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놀이공원에 ‘미국 밀입국 체험장’

  • 입력 2007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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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입국 체험 놀이에 참여한 멕시코인들. ‘밀입국자들’이 국경 경비대의 감시망을 피해 덤불 사이에 몸을 숨기고(위), 다른 참가자들은 수비대원으로 가장한 놀이공원 직원에게 붙들렸다. 사진 제공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밀입국 체험 놀이에 참여한 멕시코인들. ‘밀입국자들’이 국경 경비대의 감시망을 피해 덤불 사이에 몸을 숨기고(위), 다른 참가자들은 수비대원으로 가장한 놀이공원 직원에게 붙들렸다. 사진 제공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로사 에스트라다 씨 가족은 출입국관리소의 감시망을 피해 악취 나는 습지를 가로질러 국경으로 향했다. 순간 서치라이트가 머리 위를 비췄다. 영어와 스페인어로 위협적인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국경 수비대다. 강을 건너다 죽을 수도 있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라.”

긴박감이 넘치는 이 장면은 미국 접경 지역의 실제 밀입국 현장이 아니다. 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국경에서 1130km나 떨어진 멕시코의 이달고에 있는 놀이공원의 ‘체험 밀입국’이라는 프로그램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가 21일 보도한 이 상품의 이름은 ‘야간 하이킹(Night Hike)’.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탕을 지나 가파른 비탈을 오르고 옥수수 밭에서 전력 질주하는 등 실제 밀입국 상황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

운이 나쁘면 미국 국경 수비대로 가장한 놀이공원 직원들에게 체포돼 끌려가야 한다. 자정을 넘겨 5시간 동안 진행되며 가격은 18달러(약 1만6900원). 2년 6개월간 약 3000명의 멕시코인이 다녀갔다.

밀입국 체험놀이에 참여하는 동기는 다양하다. 알프레도 트레조 씨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정도로 스릴 넘치는 놀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에 세 번 참여한 에스트라다 씨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싶다”며 “함께 온 12세 아들도 무언가 배워 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놀이공원 측은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몰래 국경을 넘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마을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상품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놀이상품이 밀입국자들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해마다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멕시코인은 48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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