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의 ‘낮은 포복’ …21년만에 가치 최저

  • 입력 2007년 2월 5일 03시 01분


일본 엔화의 기록적인 약세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일본의 수출기업들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으나 자국 기업의 경쟁력 상실과 무역수지 악화를 우려하는 유럽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9일부터 독일에서 열리는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는 엔화 환율을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973년 3월을 100으로 한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1월 현재 97.7까지 떨어져 1985년 9월 엔고 유도를 결정한 플라자합의 이후 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실질실효환율이란 달러화나 유로화 등 하나의 통화가 아니라 주요 통화에 대한 가치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로 수출 환경을 평가할 때 주로 사용한다.

지난해 5월 말 111엔대이던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도 최근 122엔대에 육박하는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

엔화가 초(超)약세현상을 보이고 있는 주된 원인은 일본의 금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현격히 낮기 때문.

투기성이 강한 국제 헤지펀드들은 저금리의 엔화를 빌린 뒤 외환시장에서 금리가 높은 나라의 통화로 바꿔 그 나라의 채권 주식 실물 등에 투자하고 있다. 이른바 ‘엔 캐리트레이드’다. 외환시장에서 엔화 공급이 넘쳐나다 보니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

현재의 엔화 약세 국면이 시작된 2005년 초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는 2%대에서 4%대로 확대됐다. 또 유럽과 일본의 금리차도 2%대에서 3%대로 커져 투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금리 인상에 의욕을 보이던 일본은행이 정치권과 정부의 압력에 밀려 지난달 금리 인상을 보류하는 결정을 하자 투기세력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 등 아시아에 투자하려는 일본의 개인투자자가 늘어나는 것도 엔화 약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엔화 약세의 혜택을 가장 톡톡히 보고 있는 곳은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일본의 수출 대기업들이다. 도요타자동차는 2006 회계연도 영업이익이 일본 기업 가운데 최초로 2조 엔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2001년 1조 엔을 돌파한 지 5년 만에 2배가 되는 셈.

혼다자동차도 지난해 10∼12월 영업이익이 2051억 엔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 늘었고 캐논은 2006 회계연도 순이익이 5000억 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일본의 금융시장에서는 엔화 약세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우선 올해 지방선거와 참의원선거를 동시에 치러야 하는 여당과 정부가 경기를 띄우기 위해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을 계속 견제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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