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입 꿈꾸는 터키 ‘암살 악몽’

  • 입력 2007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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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20세기 초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거론했다가 기소됐던 터키의 아르메니아계 언론인 흐란트 딩크(53) 씨가 19일 피살됐다.

유럽연합(EU)은 이 사건을 즉각 ‘야만적인 폭력 행위’로 규정하고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EU 회원국은 그동안 터키 정부에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에 대한 사과와 이를 다루는 언론 출판의 자유 보장을 EU 가입 조건 중 하나로 내세워 왔다.

터키 정부는 20일 용의자인 17세 소년 오군 사마스트 군을 발빠르게 긴급체포하며 일단 국제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마스트 군은 암살 직전 딩크 씨가 일하는 주간 ‘아고스’사를 찾아가 앙카라대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딩크 씨와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건물 밖에서 기다리다 딩크 씨를 권총으로 쏜 것으로 알려졌다. 딩크 씨는 머리와 목에 권총 3발을 맞고 숨졌다.

터키에서 유일하게 아르메니아어와 터키어로 동시에 발행되는 신문인 ‘아고스’는 딩크 씨가 1996년 설립해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딩크 씨는 오스만튀르크 제국 시절인 1915년 터키인이 소수 민족인 아르메니아인을 100만 명가량 학살한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2005년 10월 국가모독죄로 기소돼 집행유예 6개월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오르한 파무크 씨도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을 언급했다가 국가모독죄로 기소당한 바 있다.

터키 정부는 이 사건은 러시아의 터키 침략을 지지하던 아르메니아인들과 이를 반대하던 터키인 사이에 일어난 충돌이며 집단 학살로 규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터키 신문 ‘사바’의 칼럼니스트인 메메트 바를라스 씨는 뉴욕타임스에 “딩크 씨 암살사건은 터키의 EU 가입에 타격을 가하려는 정치적 동기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터키는 이제 가장 용감하고 자유로운 목소리를 잃게 됐다”고 애도했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대변인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보복이나 협박을 당하는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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