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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월 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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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년 인터뷰를 위해 최근 미국 보스턴의 매사추세츠공대(MIT) 폴 새뮤얼슨 교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92세의 노(老)석학은 대뜸 기자에게 질문부터 던졌다. 많은 인물을 인터뷰해 왔지만 오히려 인터뷰 대상이 된 것은 드문 일이었다.
오래된 책과 낡은 칠판이 있는 고즈넉한 연구실. 커다란 의자에 등을 기댄 새뮤얼슨 교수는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대화는 가볍게 시작됐다.
웬일일까. 5분 정도로 끝날 줄 알았던 서론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기자의 개인사 ‘탐문’이 끝나자 그는 “뉴욕에 있을 때 운전사가 한국인이었는데 부지런했다. 원래 한국인의 국민성이 부지런한가”라며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한국의 사회, 문화로 시작된 주제는 정치, 경제, 교육, 북한 문제로 차례차례 옮겨 갔다. 고령의 몸이었지만 그의 발음은 정확했고 이어지는 질문은 집요했다.
그는 한국의 종교에 대해 물은 뒤 “종교 분포와 연봉 간에 상관관계가 있느냐”고 했고, 성형수술을 화제에 올리며 “한국에서 미의 기준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부동산 문제 및 도심밀집 현상과 관련된 이야기는 “주거비는…” “대중교통 상황은…” “주차비는…”이라는 세세한 내용으로까지 이어졌다.
새뮤얼슨 교수가 “뭐가 궁금하다고 했지?”라며 인터뷰에 나설 의사를 밝힌 것은 속사포처럼 질문을 퍼부은 지 1시간이 지난 뒤. 원래 그렇게 질문이 많으냐고 묻자 “그래야 내가 (인터뷰할 기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열정을 유지하는 비결이 뭐냐고 묻자 “꾸준히 걷기운동을 하고 세 쌍둥이를 포함해 6명의 자식과 행복한 가정생활을 한 것, 과거에 열심히 테니스를 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뉴욕타임스를 읽고 정기적으로 경제칼럼을 쓴다고 말했다.
사람이 하는 질문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한다는 말이 있다. 세상 속의 무엇을 얼마나 궁금해 하는지가 그를 규정하는 핵심이다. 나이의 한계를 넘어선 새뮤얼슨 교수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은 이를 새삼 되새기게 했다. 학계의 거장다운 단면으로 다가왔다.
새해를 시작하는 첫 주, 그가 하얀 분필로 잔뜩 적어 두었던 각종 수식과 그래프의 잔상이 사라지기는커녕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이정은 국제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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