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슈퍼맨”vs“빈라덴 뺨치는 악당”…갈라진 2006 USA

  • 입력 2006년 12월 30일 03시 00분


“과학적 여론조사 기법이 도입된 지난 50년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만큼 주요 정치·외교 현안에 대한 미국 국민의 의견이 갈라진 적은 없었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게리 제이컵슨 교수가 저서 ‘통합자가 아닌 분리자’에서 진단한 미국 사회의 현주소다. 그의 말처럼 미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념·가치관의 양극화가 심각한 상태로 2006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한쪽에선 최악의 악당, 한쪽에선 최고 영웅=AP통신과 아메리카온라인(AOL)이 28일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는 부시 대통령에 대해 극단으로 갈리는 미국인들의 평가를 보여 준다. 1004명의 미국 시민에게 여러 유명 인사의 이름을 제시한 뒤 “올해 최대의 악당을 꼽아 달라”고 하자 25%가 부시 대통령을 꼽았다. 반면 올해 최고의 영웅을 묻는 질문에서도 부시 대통령은 13%의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표 참조).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는 43%가 부시 대통령을 최대의 악당으로 꼽았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 가운데 27%, 기독교 복음주의자 그룹에선 25%가 그를 영웅으로 꼽아 매우 높게 나타났다.

▽갈수록 벌어지는 지지 정당별 견해차=올 하반기 미국 내 여러 여론조사들은 “이란이 핵무장을 할 경우 미국이 우방들과 함께 군사력을 동원해 저지해야 한다”는 데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에 대해 공화당 지지자의 70%, 민주당 지지자의 40%가 긍정적으로 답해 지지 정당별 격차가 약 30%포인트나 됐다.

미국의 위상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2004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전반적으로 공정하고 품위가 있다’는 설문 항목에 부시 지지자는 83%가 동의했지만 민주당 지지자는 46%만 지지했다.

특히 이라크전쟁은 지난 수년간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 간의 양극화를 부추겨 온 이슈였다.

이라크 침공 전인 2002년 여름 조사에서 “미국이 우방의 지지 없이도 군사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 공화당 지지자는 34%, 민주당 지지자는 20%로 격차가 14%포인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3년 초 전쟁이 임박하자 양당 지지자별 격차는 26%포인트로 벌어졌고, 2004년 이후부터는 평균 63%포인트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고 제이컵슨 교수는 분석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의 기관지로 불리는 위클리스탠더드조차 “정치적 양극화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고개를 들었지만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과 주요 외교 현안을 놓고 국민 간에 이렇게 의견이 갈린 적은 없었다”고 우려했다.

▽양극화의 파장은?=여론분석 전문가들은 “지도자가 휘발성이 강하고, 견해차의 스펙트럼이 넓은 이슈를 국가 어젠다로 제기할 경우 국민은 이념 및 계층에 따라 양 극단으로 쏠리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쟁은 물론 감세, 사회복지 및 교육제도 변경 등 이념 및 계층에 따른 분열 가능성이 큰 ‘휘발성 이슈들’을 계속 어젠다로 제기하면서 스스로 분명한 이념적 태도를 취해 왔다. 2004년 대선 때는 동성 간 결혼, 줄기세포 연구 등 도덕·가치관에 관련된 이슈들을 집중 제기해 보수층을 결집시켰다. 당시 “○○가 당선되면 이민 간다”는 농담이 퍼질 정도로 미국 사회는 반(反)부시와 친(親)부시로 양분됐다.

이런 분위기로는 공화당 텃밭에선 ‘가장 공화당다운’ 후보가, 민주당 텃밭에선 ‘가장 진보적인 후보’가 공천 받을 공산이 커진다. 그 결과 앞으로 워싱턴과 주 의사당은 보수와 진보의 전사(戰士)들이 득실대고, 중간 지대는 점점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들려오고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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