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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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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하이(57) 씨는 9월 로스앤젤레스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수중에는 빌린 돈 600달러와 장남 뚜언(36)이 인근 샌타애나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 빛바랜 아들 사진뿐.
통일 전 남베트남의 군인이었던 남편이 전투에서 숨지자 응우옌 씨는 16세 된 맏아들 뚜언을 밀항선에 태워 미국으로 보냈다. 한동안 뚜언은 시계수리공으로 일하며 잘살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 왔다. 그러나 4년 전 편지가 갑자기 끊겼다.
응우옌 씨는 2001년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 2개월밖에 못 산다고 해 수술과 항암치료를 포기했다. 그러나 기적처럼 암은 악화되지 않았다. 아들을 찾고 싶었다.
생애 처음으로 미국에 온 그는 아들의 옛 주소지부터 찾았지만 아들은 그곳을 떠난 지 이미 오래였다.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그는 매일 수 km 이상을 걸었다. 유일하게 아는 영어인 ‘소리(Sorry)’를 외치며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전단도 뿌렸다. 이윽고 여행 경비도 떨어졌다.
그의 사연은 베트남인들이 모여 사는 로스앤젤레스 웨스트민스터의 ‘리틀 사이공’에 알려졌다. 지역라디오에도 사연이 방송됐다. 성금 1000달러가 모였다. 웨스트민스터 경찰은 뚜언이 강도짓을 저질러 수감된 뒤 석방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로스앤젤레스를 헤매던 응우옌 씨에게 샌프란시스코 인근 새너제이에서 아들을 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응우옌 씨는 새너제이 거리의 노숙인들을 뒤졌다. 마침내 지난달 19일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식당에서 구걸하는 노숙인을 발견했다. 뚜언이었다.
초점 없는 눈을 한 아들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어머니가 이름을 부르자 그는 “사람 잘못 봤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껴안으려 하자 그는 밀쳐 냈다. 아들의 주머니에는 단돈 69센트가 들어 있었다. “날 놔둬요, 아줌마.”
그럴 수는 없었다. 1만2874km를 날아와 무너지는 마음을 추슬러 가며 3개월간 걸어 헤맨 까닭은 오직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현재 아들과 새너제이의 한 베트남 사원에 머물고 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만신창이 아들을 병약한 어머니는 정성들여 돌보고 있다. 응우옌 씨는 비자가 만료되는 내년 1월 전에 뚜언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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