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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1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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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국방부 부장관에서 세계은행 총재로 옮긴 울포위츠(사진)는 존 볼턴 유엔주재 대사,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강경보수파 그룹이 퇴장하는 가운데 무풍지대에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마저 최근 ‘코드 인사’와 ‘이라크에의 집착’으로 세계은행 간부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는 것으로 드러났다.
○ 경력보다 코드 중시
블룸버그통신의 집계에 따르면 그의 취임 뒤 1년 반 만에 세계은행 전체 이사의 절반인 14명(정년퇴임 3명 포함)이 물러났다. 페루 전 총리인 로베르토 다니노 고문, 이언 골드윈 대외담당 부총재, 크리스천 푸어트먼 중동담당 부총재 등이 갈등 속에 떠났다.
그 대신 백악관 관리예산국에서 이라크전쟁 예산확보를 밀어붙였던 로빈 클리블랜드가 총재 보좌관, 딕 체니 부통령의 대변인이었던 케빈 켈럼스가 대외전략 이사에 임명됐다. 공화당 국제기구(IRI) 총재이며 이라크재건사무국 부소장인 조지 폴섬의 부인인 수전 리치 폴섬은 반(反)부패업무 총괄 이사가 됐다.
세계은행 직원협의회 앨리슨 케이브 의장은 “총재가 경륜 많은 전문가들보다 공화당 출신 소수 영입자 그룹을 더 신뢰한다”고 비판했다. 데베시 카푸르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도 “경험이 모자라거나 이념 지향적 인사들이 고위직에 오른 것은 전례 없는 변화”라고 지적했다.
사실 울포위츠 총재는 취임 후 한동안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은행의 사명이 소중하다고 믿기 때문에 이 자리를 맡았다”고 공언한 그는 아프리카의 빈곤 퇴치에 집중하면서 부패 추방을 위한 개혁안도 마련했다. 또 “미국의 농업보조금 정책이 가난한 나라들을 더 곤궁에 빠뜨린다”며 친정인 미 행정부에도 할 말을 했다.
○ 못 잊을 이라크
그는 개발담당 이사가 이라크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재건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고 하자 2명의 고위급 간부를 급파해 바그다드 사무실 개소를 추진했다. “상황이 너무 안 좋다”는 보고에도 사무실 계약을 하게 했다.
그는 “세계은행이 나서면 훨씬 더 중립적이어서 효율적”이라며 대부 및 무상지원 결정을 잇달아 밀어붙였다. 프랑스 출신 간부를 비롯해 내부에선 “세계은행을 ‘부시 정책’의 도구로 이용한다”는 반발이 심해졌다.
그는 집무실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옆에서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쫓겨났다’는 브리핑을 받는 사진을 걸어 놓았다. 그때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말해 온 그는 독재와 전체주의에 뿌리 깊은 반감을 지닌 이상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점령 시절 폴란드에서 이민 온 유대인의 아들로서 상당수 친척이 홀로코스트로 희생됐다.
그런 그가 필생의 과업으로 설계하고 밀어붙인 ‘후세인 제거 프로젝트’가 자신은 물론 네오콘 그룹 전체를 쇠락의 길로 내몬 계기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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