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국립대 법인화 2년반 현주소는…

  • 입력 2006년 12월 11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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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일 교토대는 졸업생을 위한 홈커밍데이 행사를 열었다. 졸업생들이 재학생의 안내로 교내 투어에 나서고 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교토대의 상징인 시계탑 건물. 이날 교토대는 총동창회도 결성했다. 사진 제공 교토대
지난달 3일 교토대는 졸업생을 위한 홈커밍데이 행사를 열었다. 졸업생들이 재학생의 안내로 교내 투어에 나서고 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교토대의 상징인 시계탑 건물. 이날 교토대는 총동창회도 결성했다. 사진 제공 교토대
《2004년 4월 일본의 전 국립대가 한꺼번에 법인화한 지 2년 반. 국립대 법인화가 성공했는지, 아니면 성공할지를 자신 있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대학 관계자들은 국립대가 살아남기 위해 법인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87개 국립대학법인은 이미 ‘효율’ ‘경쟁’ ‘성과’를 앞세워 메이지(明治) 이후 최대의 대학개혁이라는 변화의 물결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일본 국립대 법인화 2년 반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일본의 국립대학 법인화가 몰고 온 크고 작은 변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대체로 다음의 7가지 변화로 요약할 수 있다.

▽총학장의 리더십에 운명을 건다=법인화 이전엔 대학에서 가장 힘이 센 조직은 교수회였다. 그러나 법인화 이후엔 인사, 예산편성, 재정운영, 조직개편, 학과 개폐 등 전 분야에서 총학장이 거의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자주성과 자율성을 높이고, 빠른 의사결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법인화가 돼도 국가에서 간여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지만 오히려 정부가 너무 간여를 하지 않아 문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부와 대학의 관계는 바뀌었다,

▽교직원도 경영마인드로 무장하라=자기 학문만 아는 교원, 자기 업무만 생각하는 직원이 줄어들고 있다. 학교 전체 차원에서 코스트 개념과 효율성을 고려하는 교직원이 늘고 있다. 업적에 따라 교직원을 달리 대우하는 연봉제나 인센티브제, 신규 채용 때 임기제를 도입하는 대학도 등장하고 있다.

▽학교 밖 전문가가 필요하다=학외 인사가 반수 이상 참여(비상근)해야 하는 ‘경영협의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에 대한 설명책임을 다하고 열린 경영을 하라는 것이다. 아예 민간기업에서 구조개혁, 조달업무, 컨설팅을 담당했던 간부를 영입해 고위직에 앉히거나 각 대학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전문가를 채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각 대학은 6년간의 대학운영 계획을 담은 ‘중기계획’과 매 1년의 액션플랜을 담은 연간계획을 문부과학성에 제출해야 한다. 실행 결과는 매년, 그리고 6년 후에 법정 기구인 ‘국립대학법인평가위원회’와 독립행정법인인 ‘대학평가·학위수여기구’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외부 자금을 끌어들여라=국가에서 지급하는 운영비교부금은 줄어들고 수업료를 올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대학 발전을 위해서는 외부 자금이나 기부금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각 대학은 산학연대, 기업의 수탁연구, 기부금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학이 직접 벤처기업을 만들거나 창업을 지원하는 사례, 대학이 갖고 있는 기술로 특허를 받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졸업생을 조직해 우군으로 활용하라=일본의 국립대학은 총동창회를 만들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국가의 혜택을 받은 우수 집단이 무리를 짓는 것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법인화를 전후해 각 대학은 총동창회를 조직하거나 졸업생의 홈커밍데이를 만들어 모교에 대한 지원을 유도하고 있다. 최근 총동창회를 발족한 고미야마 히로시 도쿄대 총장은 “국내를 상대로 하자면 동창회가 필요없지만 세계를 상대로 하려면 동창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 공헌하라=그동안 국립대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우수 학생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출생률이 감소하고 자립을 강요받는 시점에서 지역주민이나 자치단체, 현지 기업과의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 법인화의 그늘 “자금 쪼들려 불안… 업무도 줄었으면”

법인화에는 그늘도 존재한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월간지 론자(論座)는 3, 4월 국립대학법인의 총학장 87명 전원을 상대로 설문조사(응답자 83명)를 해 그 결과를 6, 7호에 실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법인화가 대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 54명(65.1%)이 ‘대체로 플러스’, 7명(8.4%)이 ‘크게 플러스’라고 응답해 4분의 3가량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불안이나 불만도 없지 않다.

가장 큰 불만은 국가가 지급하는 운영비교부금을 법인화 이후 6년간 매년 1%씩 깎는 것. 국가는 대학운영을 효율화하고 외부자금을 유치해 이를 메우라고 독려하고 있다. 6년 뒤에 어떻게 할지는 아직 미정.

평가와 경쟁이 강조되면서 교직원의 업무량이 크게 늘어난 것도 불만이다. 요시타케 히로미치 쓰쿠바대 부학장은 이를 ‘평가 피로’라고 부르며 매년 하는 평가나 보고를 2년이나 3년에 한 번씩으로 줄여줄 것을 요구했다.

법인화 이전부터 예상돼 왔던 대도시 대학보다 불리한 지방대, 종합대보다 불리한 단과대의 불안도 여전하다.

■ 살아남은 인도철학과

국가눈치 안봐… 기초학문도 대학 나름

일본에서 국립대 법인화 논쟁이 벌어지며 ‘각광’을 받기 시작한 학과가 있다. 인도철학과다. 이유는 그리 달갑지 않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국립대학이 법인화되면 기초학문은 버림 받아 고사할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법인화 반대론자들이 그런 피해를 보게 될 기초학문의 대표적인 예로 든 게 인도철학과였다. 법인화가 되면 돈 되는 학문이나 인기 학과에만 투자할 텐데 돈도 못 끌어들이고 취직도 힘든 인도철학과가 가장 먼저 없어질 게 아니냐는 얘기였다.

반론도 만만찮았다. 대학개혁운동을 펼쳐 온 사와 아키히로 도쿄(東京)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교수는 “법인화된 대학에서는 인도철학과의 필요성을 국가가 아니라 학장에게 얘기하면 된다”며 “오히려 국립대 체제보다 법인화 체제가 (학과의 존립에) 더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학문의 필요성과 지위 보전의 필요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논지였다.

마쓰자카 히로시 문부과학성 국립대학법인지원과 과장보좌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법인화된 대학에서 어떤 학문을 키우고 버릴지는 대학이 결정할 수 있는데 법인화 때문에 특정 학문이 버림 받을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였다.

법인화가 된 지 2년 반. 인도철학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마쓰자카 과장보좌는 “인도철학과는 하나도 없어지지 않았다”며 법인화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인도철학과나 인도철학전공은 도쿄대 교토(京都)대 규슈(九州)대 홋카이도(北海道)대 도호쿠(東北)대 등 법인화 이전부터 주요 국립대와 상당수 사립대에 개설돼 있다.

○ 도움말 주신 분들

마쓰자카 히로시(松坂浩史) 문부과학성 국립대학법인지원과 과장보좌, 아카이와 히데오(赤巖英夫·전 군마대학장) 재단법인 국립대학협회 전무, 사와 아키히로(澤昭裕)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교수,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 도쿄대 총장, 요시타케 히로미치(吉武博通) 쓰쿠바대 부학장, 유타 신이치(油田信一) 쓰쿠바대 산학리에이전공동연구센터장, 기타니 마사토(木谷雅人) 교토대 부학장, 하시모토 데쓰야(橋本哲哉) 가나자와대 부학장 (취재순)

도쿄·쓰쿠바·교토·가나자와=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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