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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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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찾아오는 한국관광객 유치단
미국 페리 제독은 1853년 일본인들이 흑선(黑船)이라고 부른 군함을 몰고 와 통상 교섭과 항해 물자 공급, 이를 위한 개항 등을 요구하며 무력시위를 하고 돌아갔다. 흑선은 일본인들에겐 충격이자 공포였다. 페리 제독은 약속대로 다음 해 또다시 찾아와 개항을 압박했다. 막부(幕府)는 단 한 차례의 회담에서 215년간 고집해 오던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하코다테와 시모다(下田) 항의 개항을 약속한다. 이때 맺은 조약을 ‘미일 화친조약’이라고 하지만 ‘화친(和親)’은 없는 불평등조약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876년. 역사는 되풀이된다. 다만 무대가 바뀌었을 뿐이다. 일본은 미국과 똑같은 수법으로 군함을 끌고 와 부산에서 함포 사격 연습으로 겁을 주고 강화도에서는 충돌을 유도한다. 역시 문을 굳게 잠그고 있던 조선도 강화도조약을 맺고 부산 인천 원산을 개항한다. 이 조약도 힘 있는 자에게만 유리한 불평등조약이었다. 도쿄(東京)에서 가까운 시모다가 인천이라면, 멀리 떨어진 하코다테는 원산쯤 될 것 같다.
그래도 하코다테는 머릿속의 도시였다. 그런 하코다테 사람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3년 전 하코다테가 고향인 일본의 한 지인에게서 시장이 한국을 방문하는데 잠시 만나 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았다. 이유를 물으니 “한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러 가는데 언론사를 방문해 하코다테의 관광자원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시장과 비서 정도만 올 줄 알았는데 20여 명이 한꺼번에 찾아와 놀랐다. 관광 업무를 맡고 있는 시 간부들은 물론이고, 시의회 의장, 시 상공회의소 회장, 항만과 공항관리회사 임원, 온천과 숙박업소 협동조합 이사장 등 하코다테의 관광책임자들이 망라돼 있었다.
전시용 이벤트도 아니었다. 그들은 다음 해에도 한국을 찾아왔다. 항공사와 여행사, 언론사와 건설교통부 등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한국관광객을 한 명이라도 더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일찌감치 개항한 이국적인 항구도시, 바다에서 나는 신선한 먹을거리, 풍부한 온천과 골프장, 아름다운 야경을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웠다.
그들의 숙원은 열매를 맺었다. 대한항공이 6월부터 주 3회 하코다테 직항편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곳에 왔다가 하코다테에도 들러보자는 관광객이 아니라, 하코다테만을 원하는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 비행기가 꽉 차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더 노력하면 언젠가는 만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
며칠 전 이들이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올해만 세 번째다. 작지만 변화를 감지했다. 하코다테를 소개하는 한글 팸플릿에 ‘한국관광객유치촉진협의회’라는 조직이 들어 있었다. 9월 5일에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명함의 뒷면은 모두 한글로 바뀌어 있었다. ‘미스 하코다테’도 동반했다.
그들의 정성은 언젠가 결실을 볼 것
일본의 광역자치단체가 한국에서 관광객 유치활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그러나 하코다테처럼 시 단독으로 꾸준하고 조직적인 활동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이유다.
한번쯤 하코다테를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저렇게 열심인 것을 보면 뭔가 색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다. 또 다른 호기심은 그들이 자랑하는 하코다테의 야경 때문이다. 처음 야경 사진을 접했을 때 그 모습이 한반도와 정말 닮아 있어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여행이 사람을 바꾼다지만, 여행을 하고 싶도록 만드는 것은 역시 사람인 것 같다. 하코다테 사람들을 만나면서 갖게 된 생각이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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