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의 진짜 사랑은 파키스탄 심장외과의사"

  • 입력 2006년 9월 12일 20시 19분


코멘트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생전에 진짜 사랑한 정부는 하스넷 칸이라는 파키스탄 출신의 심장외과의사였다고 집사였던 폴 버렐이 미국 ABC방송 회견에서 밝혔다.

버렐은 ABC뉴스 "굿모닝 아메리카 주말판'과의 단독회견에서 "다이애나는 왕립 브롬톤 병원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만났다"고 밝힌 것으로 ABC방송 온라인이 12일 전했다.

그에 따르면 병원에서 왕세자비가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누군가가 발을 밀어 넣었다. 문이 열렸고 그의 눈을 본 왕세자비는 "알았어요. 그럼 거기서"라고 말했다는 것.

집사 시절의 이런 저런 일을 폭로해 논쟁을 일으킨다는 비판을 받아온 버렐은 12일 "우리가 있었던 길"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발간한다.

버렐은 이 책에서 교통사고로 함께 숨진 도디 알 파예드는 휴일용 애인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다이애나가 알 파예드와 알고 지낸 기간은 26일에 불과하며 그가 다이애나의 사저인 켄싱턴궁에서 보낸 시간은 10분밖에 되지 않는다.

알 파예드는 이 짧은 기간에 다이애나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진주 팔찌, 불가리 귀걸이 등 선물공세를 폈다. 다이애나는 버렐에게 알 파예드가 다음에 반지를 주면 어떻게 해야할지 물었다. 버렐은 우아하게 받되 우정의 반지로 보이도록 오른 손 넷째 손가락에 끼라고 충고했다. 실제로 알 파예드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반지를 선물했으며 다이애나는 사망시 오른 손에 반지를 끼고 있었다.

버렐은 알 파예드가 사고 당일 다이애나에게 구혼할 계획이었으며 둘이 결혼할 예정이었다는 등의 소문은 모두 알 파예드의 아버지인 모하메드 알 파예드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다이애나가 짧은 생애에서 진짜 사랑한 정부는 런던에서 연수 중이던 하스넷 칸이라는 파키스탄 출신의 심장외과 의사였다.

버렐의 회고록에 따르면 다이애나는 "첫날부터 홀딱 반해" 그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었다.

왕세자와 이혼할 무렵에는 칸과의 사랑에 푹 빠져 그에게 "눈이 부실 정도의 멋쟁이"(drop dead gorgeous)라는 의미로 DDG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버렐은 ABC 방송 진행자에게 "칸은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거나 몸매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으며 담배를 피웠다"며 "그는 눈이 부실 정도의 멋쟁이였다"고 말했다.

버렐은 다이애나와 칸이 행복한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도록 차 뒷좌석에 칸을 태우고 격자무늬 모직물로 덮어 켄싱턴궁으로 몰래 데려오기도 했다.

통상적인 업무의 일부로 런던시내로 외출해 칸을 찾아내 데리고 오곤 했다는 것.

그는 "칸을 차에 태워 정문에 폐쇄회로 카메라가 설치돼 있지 않은 마거릿 공주의 거처 맞은 편에 있는 사적인 장소로 데려오곤 했다"고 밝혔다.

한번은 밤중에 마거릿공주 아파트의 블라인드 커튼이 갑자기 열린 적이 있다. 그러자 왕세자비는 "마거릿 잘 자요"라며 번뻔스럽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칸이 비번일 때는 다이애나가 변장을 하고 그의 침실 한 개 짜리 아파트를 찾아가기도 했다. 왕세자비는 거기서 접시를 닦고 칸의 옷을 다려주는가 하면 침대시트를 갈아주면서 하루 종일을 보내기도 했다.

한번은 칸을 찾느라 특히 고생을 한 적도 있다. 심장외과 의사인 칸은 매우 바쁜 사람이었다. 24시간 동안 수술에 매달린 후 만 하루동안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럴 때면 왕세자비는 며칠씩 그를 만나지 못한다.

다이애나는 그로부터 2,3일간 소식을 듣지 못하면 "폴 제발 나가서 그를 찾아봐요"라고 부탁하곤 했다. 한밤중에 런던거리로 나가 바와 클럽, 선술집, 식당 등을 샅샅이 뒤진 끝에 한 구석에서 그를 찾아낸 적도 있다.

버렐은 ABC방송에서 다이애나가 도디 알 파예드와의 결혼은 주저했지만 칸과는 "필사적으로 결혼하려 했다"고 증언했다.

자신에게 "비밀결혼을 주선해 줄 수 있는지" 물은 적도 있다. 로마 가톨릭 신부를 찾아가 "왕세자비가 누군가와 비밀리에 결혼하려는데 증인 없이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으나 "절대로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혼의 꿈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았다.

왕세자비는 마지막으로 믿을만한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게 해 그들의 사랑을 공식화하려 했다. 버렐에 따르면 다이애나는 미디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전문가였다. 그러나 DDG가 여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왕세자비는 죽기 6주전인 1997년 7월 칸과의 사이를 끝냈다. 버렐은 다이애나가 칸과 있을 때 "내가 본 중에서 최고로 행복했다"고 말했다.

버렐은 마지막 아이러니는 다이애나가 죽던 날 칸이 그를 살릴 수 있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사고 며칠 후 비탄에 빠진 칸이 전화를 걸어와 자신은 다이애나의 사인이었던 동맥파열 처치 절차를 잘 안다면서 "내가 살릴 수 있었는데"라고 울면서 소리쳤다는 것이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