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즈펠드 “오 마이 갓”…‘40년 탄탄대로’ 최대 고비에

  • 입력 2006년 9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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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전쟁입니다. 그냥 범죄 행위로 규정해선 안 됩니다.”

2001년 9월 11일 오후 1시 2분. 미국 백악관과 펜타곤(국방부 청사)을 연결한 긴급 화상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도널드 럼즈펠드(74·사진) 국방장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여객기가 펜타곤 건물에 떨어진 지 4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9·11테러를 가장 먼저 ‘전쟁 발발’로 규정한 판단력과 추진력으로 럼즈펠드 장관은 그 후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9·11테러 5주년을 앞둔 지금 그는 위기를 맞고 있다. 사임을 요구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이름은 열거하기조차 힘들 지경이며, 4일엔 일부 공화당 하원의원까지 가세했다. 40년 넘게 누려 온 관운(官運)이 다한 듯 그는 최대 고비에 섰다. 이라크전을 비롯한 국가안보정책이 실패했다는 게 사임 요구의 가장 큰 이유.

불같은 비판 여론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그의 입이었다. 그는 지난달 29일 연설에서 부시 행정부 비판론자들이 ‘도덕적 혼란’을 겪고 있다며 “1930년대 나치정권을 포용하려다 실패로 돌아간 교훈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럼즈펠드는)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나치 포용론자에 비유하는 위험한 장사를 벌이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이르면 이번 주 상원에서 국방장관 불신임 투표를 추진하기로 했으며, 하원에도 사임 촉구 결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이어서 가결될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그러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럼즈펠드’라는 이름 자체가 부시 행정부 실정의 상징처럼 부각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그를 경질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여전히 미 정가에 우세하다. 그러나 지지율 30%대를 헤매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 중간선거 후 새 인물을 모색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경우에도 그가 주도해 온 부시 행정부의 강경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럼즈펠드 장관은 부시가(家)와 묘한 인연을 맺어 왔다. 30세에 하원의원에 당선돼 42세에 백악관 비서실장, 43세에 최연소 국방장관을 지낸 그는 라이벌인 조지 부시(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전 대통령에게 밀려 대권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 후 중동특사,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을 역임하면서 워싱턴 정가의 거물로 군림해 온 그는 하원의원 시절 보좌관으로 발탁한 27세 청년 딕 체니가 현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이 되면서 2001년 다시 국방장관 자리에 올랐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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