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르카위 최후의 순간]“생포하려다 놓칠라… 그냥 때려라”

  • 입력 2006년 6월 10일 03시 00분


《이라크 알 카에다를 이끌던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40) 제거 작전은 역시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을만큼 흥미로운 것이었다.

특히 작전 과정에서 자르카위의 조직에 깊숙이 몸담고 있던 내부자의 정보 제공이 결정적이었다고 뉴욕타임스가 9일 보도했다.

미군이 보유한 첨단 첩보장비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전은 배신에서 시작됐다

자르카위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미군이 먼저 주목한 인물은 셰이크 아브드 알 라만이었다. 라만이 자르카위가 가장 신임하는 ‘영적 조언자’라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미군은 원격조종 무인비행기까지 동원해 수주일간 라만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했다. 그러나 라만이 자르카위를 만나는 시점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자르카위를 아슬아슬하게 놓친 적이 있어 이 정도 추적은 어설픈 작전이 될 가능성이 많았다.

미군에 필요한 인물은 바로 내부 조직원이었다. 그것도 자르카위와 가깝고 그의 소재를 알 만한 위치에 있는 핵심 조직원의 ‘배신’이 절실했다. 바로 이때 기다리던 인물이 나타났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를 자르카위에게 데려다 줄 내부 인물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요르단 당국자는 “자르카위 조직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고 약간 다르게 주장했다. 어쨌든 윌리엄 캘드웰 미군 대변인은 “(내부자의 제보를) 100% 확신했다”고 밝혔다.

이 제보자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누리 카말 알 말리키 총리는 “보상금 2500만 달러(약 238억 원)는 약속대로 지급돼야 한다”고 말했다.

●생포는 아예 단념했다

7일 오후 이라크 북부도시 바쿠바의 작은 마을 히비브를 미군의 대테러 특수부대원들과 이라크 보안군이 물샐틈없이 에워쌌다. 약간의 총격전이 오갔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마을 상공을 비행하던 미군의 F16 전투기 2대 중 1대가 500파운드(약 220kg)의 레이저유도탄을 문제의 ‘안가(安家)’를 향해 발사했다. 몇 초 뒤 유도탄 한 발이 더 발사됐다. 마을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었다.

공습은 미군이 의도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지상군의 포위 공격으로는 자르카위가 또 탈출할 위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생포는 포기했다는 얘기다.

자르카위는 공습 때 즉사하지는 않았다. 공습이 끝난 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이라크 경찰. 그들은 자르카위를 들것에 실었다. 나중에 미군이 도착하고 난 뒤 자르카위는 숨을 거뒀다. 현장에 있었던 미군에 따르면 자르카위는 처음에는 의식이 있었고, 미군의 존재를 알아채고 들것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알 카에다는 건재할 듯

알 카에다는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수많은 세포조직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이라크 내 책임자에 불과한 자르카위의 사망으로 조직 전체가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프랑스 분석가 도미니크 토마 씨는 “자르카위는 알 카에다의 국제적 활동반경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자르카위는 종교적 영향력이 있는 성직자가 아니라 테러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편 석유시장 관계자들은 자르카위의 사망 소식으로 한때 국제 원유가가 하락했지만 유가 약세가 이어지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 백악관 표정

7일 자르카위의 제거 소식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전에 없이 ‘낮은 포복’ 자세를 보였다.

사건 발표도 이라크 총리에게 미뤘고, 부시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차분함을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2003년 전쟁 개시 3개월 만에 항공모함 선상에서 부시 대통령이 군복까지 입고 ‘임무 완수(Mission Accomplished)’를 선전하던 때와는 딴판이었다.

뉴욕타임스는 9일자에서 “잘못은 시인하고, 여론의 반응을 고려하고, 현실감각을 유지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낙관적인 기대를 접지 않는다”는 새로운 전략에 충실했다고 평가했다.

2004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는 널뛰기 여론에 호되게 당한 전력이 있다. 당시 전쟁 지지율은 47%에서 64%로 껑충 뛰어올랐지만 2개월 만에 50% 밑으로 다시 떨어졌다.

미 정부는 8일 단기적인 무장테러활동의 급증을 우려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라크 내 알 카에다는 지도자의 사망에도 반미 전선에 차질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오히려 테러 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미군 사망자가 늘어날 경우 쏟아질 비난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계산이 엿보이는 논평이다.

미국은 최근 들어 잇따라 공개되고 있는 미군의 이라크 민간인 고의사살 의혹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따라서 자르카위 제거 작전의 성공이 반전 여론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온다고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이날 이라크 바그다드 외곽에서 자동차 폭탄공격으로 이라크인 15명이 사망하고 또 다른 차량폭발 사고로 역시 이라크인 5명이 죽었다.

한편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이라크의 폭력 종식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그처럼 극악한 인물이 이라크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된 것은 큰 위안”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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