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자유선거 과격세력만 키웠다?

  • 입력 2006년 2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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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실시된 이라크 총선 당선자의 3분의 2가 이슬람종파주의자였고, 이집트 총선 당선자의 20%가 무슬림형제단 소속 과격파였다. 1월 팔레스타인 총선 결과는 무장단체 하마스의 승리로 끝났다.

이런 결과는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민주주의 확산’ 정책이 낳은 부산물이다.

부시 행정부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유선거 실시를 꼽으며 중동 국가들을 압박해 왔다. 하지만 막상 선거가 실시되자 이슬람 근본주의 그룹과 과격 테러단체들이 선두로 나선 것.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은 연두 국정연설에서 “민주주의 확산은 미국의 역사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라고 규정하며 민주주의 확산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북한을 비롯한 5개 국가를 자유가 없는 국가로 꼽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미국 외교전문가 그룹 사이에서도 민주주의 확산 정책의 공과(功過)와 실효성 여부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당장 네오콘(신보수주의) 그룹의 이상론을 비판하는 전문가들은 “이미 경고했지 않느냐(I told you so)”는 태도다.

지난해 9월 “민주주의 증진으로 테러를 막을 순 없다”는 글을 격월간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그레고리 고즈 버몬트대 교수는 다시 그 후기를 통해 “미국은 이제 자유선거가 이슬람주의 그룹을 키울 뿐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즈 교수는 “당장 민주화 정책에서 손을 떼라고 하고 싶지만, 미 행정부가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인 만큼 선거로 대표되는 민주화 대신 점진적인 자유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드워드 맨스필드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와 잭 스나이더 컬럼비아대 교수는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문에서 “부시 대통령의 강압적 민주화 정책은 그에 필요한 정치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나라들에서 전쟁과 분열, 테러를 조장하는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비판론자가 부시 행정부의 정책 U턴을 주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권교체로 대표되는 강압적 민주화 정책 대신 다양한 유인책과 압력수단을 사용하는 장기적인 ‘인내의 미덕’을 강조한다.

칼스 부아 시카고대 교수는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의 ‘폴리시 리뷰’ 기고문에서 “단순히 자유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룰 순 없다”며 “민주주의는 비옥한 토양에 뿌리를 내려야 하고 비옥한 토양을 위해선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 역시 정책 방향을 바꿀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부시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선거 실시가 절대 필요한 것이긴 하나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너무 성급한 압박이 낳은 부작용에 대해 나름의 ‘속도 조절’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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