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애국자 둔갑 원혼들 명예회복 언제…

  • 입력 2005년 10월 20일 03시 08분


1959년 합사… 2005년 삭제일본 정부가 1993년 한국에 건네줬으나 유족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에 ‘야스쿠니신사 합사수속완료(合祀手續濟)’라는 도장이 선연하다(왼쪽). 1959년(쇼와 34년) 10월 17일 합사됐음을 보여 주는 야스쿠니신사 제신부 1582호 표지와 ‘니시야마(西山)’라는 일본식 성에 병근(炳根)이란 이름을 가진 한국인이 합사자 명부에서 삭제됐음을 보여 주는 속지. 도쿄=조헌주 특파원
1959년 합사… 2005년 삭제
일본 정부가 1993년 한국에 건네줬으나 유족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에 ‘야스쿠니신사 합사수속완료(合祀手續濟)’라는 도장이 선연하다(왼쪽). 1959년(쇼와 34년) 10월 17일 합사됐음을 보여 주는 야스쿠니신사 제신부 1582호 표지와 ‘니시야마(西山)’라는 일본식 성에 병근(炳根)이란 이름을 가진 한국인이 합사자 명부에서 삭제됐음을 보여 주는 속지. 도쿄=조헌주 특파원
일본 야스쿠니(靖國)신사에는 19일 현재 태평양전쟁 희생자 213만3915명을 비롯해 모두 246만6532명이 합사돼 있다. 이 중 남북한을 포함한 한국인은 2만여 명, 대만인은 8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합사자를 국적별로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국별 숫자는 파악되지 않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에 한국 측이 강력히 반발하는 것은 그곳에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2만여 명의 한국인을 멋대로 일본 국왕을 위한 애국자로 둔갑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역대 한국 정부조차 한국인 합사자 문제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아 유족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1993년 한국에 대량으로 건네준 한국인 희생자 명단에는 ‘야스쿠니신사 합사수속 완료’란 도장 자국이 선연한데도 유족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준 적이 없어 합사 사실을 모르는 유족이 대부분이다.

▽한국을 모욕한 합사=야스쿠니신사가 주일대사관을 통해 유족에게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고인이 된 조병근 씨의 명단이 포함된 합사자 명부는 ‘야스쿠니신사 제신부(祭神簿) 1582호’. 1959년 10월 17일 가을철 대제 때 합사된 것으로 되어 있다. 표지에는 ‘해군, 조선’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민간인 신분인 군속을 군인으로 취급해 합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일제하에서 사망한 시점이 아니라 전후 14년이 지난 1959년에 합사했다는 점이다. 당시 한국은 더는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므로 멋대로 합사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불법 공문서 유출=야스쿠니신사는 1869년 메이지(明治) 일왕의 지시로 만들어진 일왕의 ‘충신’을 기리는 왕실 산하 기관이었다. 각종 전란에 휘말려 숨진 일본인 중에서도 일왕의 반대편, 막부(幕府) 편에서 싸우다 숨진 사람은 합사하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종결 후에는 독립된 민간 종교시설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야스쿠니신사 합사 과정은 민간 종교시설 차원에서만 이뤄지지는 않았다. 태평양전쟁 희생자 문제를 담당하던 후생성이 1959년에 한국인 희생자 명부를 신사 측에 한꺼번에 전달해 합사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공문서 유출에 해당하며 정교분리를 규정한 일본 헌법에도 명백히 위반되는 불법 행위라 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무책임=정부는 가장 많은 자료가 넘어온 1993년을 비롯해 몇 차례에 걸쳐 일본 측에서 한국인 희생자 명부를 받았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1993년 당시 관련 부처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일본 측에서 받은 자료에 관해 상부로부터 어떤 지침도 받지 못했으며 고민 끝에 서류를 행정자치부 정부기록보존소에 보냈다”고 말했다. 정부기록보존소에 보냈기에 망정이지 자칫 폐기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 측이 한국에 건넨 개인별 신상 기록에는 희생자의 이름은 일본식으로 되어 있지만 주소와 유족 이름 등이 정확히 기재돼 있어 행정전산망을 통해 유족을 손쉽게 찾아 낼 수 있는 상태였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