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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9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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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공산통일을 이루었을 때 베트남은 아시아 최빈국이었다. 전쟁 통에 경제는 거덜이 났고 산업은 없다시피 했다. 베트남은 통일 이후 한동안 과거 월남지역 인민에 대한 대규모 사상교육을 실시하고 사회주의 노선에 따라 공산권 국가하고만 수교했다. 나라 경제사정이 나아질 리가 만무했다.
그러다 통일 10년 후인 1986년 국가 정체를 바꾸다시피 한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한다. ‘도이모이’로 불리는 경제부흥정책이 그것이다. 국내 경제체제부터 자본주의 경제에 가깝도록 바꾸어 나갔다.
도이모이 정책의 요체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경제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국가와도 타협하고 외국투자를 적극 유치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로선 월남을 도와 월맹에 총구를 겨눈 ‘원수의 나라’들과 손잡는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 정책으로 서방세계와 경제협력이 시작됐고 미국과는 1995년 7월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레주언 국가주석이 미국을 공식 방문한다.
이 같은 화해노선으로 베트남에는 1990년대 초부터 외국기업의 투자가 줄을 이었고 연평균 10%에 달하는 경제성장과 경공업 및 제조업 분야의 산업기반이 조성됐다.
2004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490달러. 그러나 연평균 7∼9%의 경제성장이 계속되고 있어 이제 베트남이 아시아의 빈국에서 탈출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베트남도 후진국이 성장하는 과정에는 최소한 3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잘살아보겠다는 국민의 의지, 잠자고 있는 국민의 의식을 일깨우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의 역량, 그리고 지도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이다.
동남아 국가 중에는 국민의 의지는 있지만 지도자의 자질이 부족하거나 부패해 국가적인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80년 중반에서 1990년대에 걸쳐 베트남을 이끌었던 레주언, 도므어이 등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념까지도 유보했었다.
레주언은 1976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거쳐 1992년 9월 23일 국가주석에 오른다. 그는 1997년까지 베트남을 이끌었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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