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월드워치]日총선참패 오카다 민주당 대표

  • 입력 2005년 9월 1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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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시작할까요.”

올해 2월 17일 오전 10시 일본 도쿄(東京) 시내 국회의사당 근처의 한 호텔. 1분도 어기지 않고 정각에 도착한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52) 민주당 대표가 건넨 첫마디는 ‘썰렁’했다. ‘바쁠 텐데 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말 정도는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기자는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오카다 대표는 그런 사람이다. 잠깐의 만남으로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친화력이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면 애당초 그는 정치와는 적성이 맞지 않는 인물이다. 50대 초반에 일본 제1야당의 대표가 된 것은 답답하리만치 우직한 성격이 묘한 매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눈팔지 않고 정면만 응시하는 듯한 성실한 이미지는 파벌 정치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에게 신선하게 비쳤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모범생의 좌절=“국어 수학 필기시험에 대비해 며칠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더니 시험과목이 체육으로 바뀌어 있더라.” 9·11 중의원 총선거가 끝난 뒤 민주당 주변에서 들리는 말이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오카다 대표)이 반사신경이 뛰어난 재주꾼(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게 어이없이 당했다는 한탄이다.

오카다 대표는 가문, 학력, 경력 등 갖출 것은 다 갖춘 엘리트다. 1990년 자민당 공천으로 금배지를 달았지만 3년 뒤 “자민당 장기집권으로는 일본의 미래가 없다”며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6선의 관록이 쌓였으면 적당히 타협할 법한데 여전히 ‘재미없는 정치인’이다. 굴지의 유통재벌인 이온그룹 창업자의 차남이지만 돈을 풀어 추종세력을 거느리려 하지도 않았다.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요정 출입도 안한다. 공식 일정이 끝나면 의원 숙소로 직행해 정책 자료집과 씨름한다. ▽아시아 중시주의의 패배=오카다 대표는 5월 대표 취임 1주년을 맞아 아시아 중시를 일본 외교의 새 방향으로 제시하는 ‘외교 비전’을 발표했다.

일본이 국제적 고립에 빠지지 않으려면 미국 추종 일변도에서 벗어나 한국 중국 등 이웃 국가와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는 게 골자. 고이즈미 정권의 미국 편향 정책과 대비돼 오피니언 리더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한국과의 전략적 제휴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민주당 간사장 시절부터 몇몇 한국 특파원과 비정기적으로 만나 일본 정국 동향을 설명하면서 연배가 비슷한 한국 정치인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

오카다 대표와 공식, 비공식적으로 만나며 적은 취재 수첩을 들춰보니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앞으로 1년간 국회 해산이나 총선은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남은 기간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오판을 했고, 갑작스레 치러진 총선은 모범생의 퇴장과 아시아주의의 패배를 낳았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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