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인공수정제한법 싸고 시끌

  • 입력 2005년 6월 13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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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시행 중인 ‘인공수정 제한법’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를 둘러싸고 여론이 심각하게 분열돼 있다. 정치권이 찬반 진영으로 나뉘고 여기에 교황청이 끼어드는가 하면 과학계까지 둘로 쪼개지는 양상이다.

이번 국민투표는 12, 13일 이틀간 진행된다. 투표 참여율이 50%를 밑돌면 국민투표 자체가 무효로 처리된다.

▽법 내용과 영향=인공수정을 위해 채취되는 난자 수를 3개로 제한했다. 시험관에서 정자와 합쳐진 수정란 3개는 한꺼번에 자궁에 이식돼야 한다.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냉동시킬 수 없다. 배아 연구를 금지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 인공수정은 남녀로 구성된 ‘정상 부부’에 한해 허용했다. ‘할머니 출산’을 막기 위해 고령 여성은 물론 동성 부부에게는 불허됐으며 제3자가 정자와 난자를 기증하지도 못하게 했다. 유전자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수정란 검사도 금지했다.

지난해 2월부터 시행된 이 법으로 이탈리아 인공수정 성공률이 30%로 떨어졌다. 정자나 난자를 구하지 못한 불임 부부들은 해외로 나가야 했다. ‘원정 인공수정’ 비용도 2배로 뛰어 1만2000달러(약 1200만 원)를 넘었다. 이 같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 때문에 법 시행 1년이 지난 뒤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갈가리 나뉜 여론=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부인은 남편이 이 법을 성안한 집권당 당수인데도 공공연히 반대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스테파니아 프레스티자코모 양성평등장관도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총리는 어떤가”라고 기자들이 묻자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누가 알겠느냐”라며 비켜 갔다. 하지만 많은 우익성향의 정치인들은 찬성 의견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6일 가톨릭 가정들은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을 확실히 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최근 2주일 만에 4번이나 찬성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잔프랑코 피니 외무장관은 “교황청은 유권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비난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198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리타 레비몬탈치니 씨 등은 “줄기세포 연구와 유전공학은 인류의 미래를 약속한다”며 반대표를 호소했다. 이에 반해 로마 사피엔차대의 브루노 달라 피콜라 유전학 교수 등은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이렇다할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며 현상유지를 지지했다.

여기에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막달라 마리아 역으로 출연한 모니카 벨루치는 반대를, 저명한 언론인인 오리아나 팔라치 씨는 찬성을 각각 외쳐 언론, 예술계도 논란의 돌풍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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