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한중일 목판화전을 보고

  • 입력 2005년 4월 5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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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지에'전환3'(2002년)
장민지에
'전환3'
(2002년)
나무를 보면 쳐다보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나무가 많은 길을 걷다보면 내 걸음은 한없이 느려 터져 동행자를 답답하게 할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엔 나무를 보면 그러더니, 이제는 나무로 만든 것에까지 그런 마음이 뻗쳤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한국 중국 일본 현대목판화전’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진작 전해 들었는데 어찌하다보니 놓쳤다 싶어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연장전을 해서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단독 목판화 전시는 이따금 가보았지만 동북아 세 나라의 목판화를 한 자리에서 구경하기는 나로서는 처음이었다.

제각기 조국이 다른 십여 명의 작가들이 펼쳐놓은 세계들을 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세 나라의 특징들이 엿보였다. 중국의 리얼리즘은 얼마간 거친 느낌이었고, 일본의 미학주의는 현실보다는 환상에 가까운 느낌이었으며, 한국의 목판화에서는 자연주의와 매우 친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분해 볼 때는 각기 다른 기법과 세계가 보이는데, 나라별로 뭉쳐놓고 보면 묘하게 그런 개인의 세계가 갖고 있는 경계가 아스라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는 그 작가가 살고 있는 나라의 산천과 민속과 사람들이 보인다.

그걸 비교해가며 작품을 보고 있자니 마치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일일이 한국작가 일본작가 중국작가 이렇게 챙겼지만, 나중엔 저만큼 떨어져 보아도 아, 저 작품은 중국작가 것, 저건 한국작가의 것이라고 알아맞히게 되었다.

기노시타 다이카(木下泰嘉)의 강렬하다 못해 잠시 자신도 모르게 피하고 싶어 주춤하게 되는 너무나 선명한 색채에 들떴다가, 색을 제거해 여백의 미가 가득한 김상구의 작품을 대할 때는 차분해졌다. 다시 중국의 장민제(張敏杰)가 일구어 낸 일사불란한 군중의 움직임을 작품 속에서 발견하게 될 때는 단순히 작품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아니면 나의 선입견 때문일까. 어쨌든 전시장을 돌다 자연스럽게 세 나라 목판화의 미학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된 것은 큰 소득이었다.

목련은 잎이 돋기 전에 꽃이 먼저 핀다. 요즘 내가 어디서건 즐겨 응시하고 있는 나무는 목련나무다. 만두집에도, 화랑에도, 골목길의 모르는 집 담장 안에서도, 수만 개의 목련 꽃망울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기온 차에 몸을 사리고 있다. 곧 터질 듯하다. 목련꽃이 터지기 전 목판화전 구경을 먼저 한 탓인가. 지금 내 눈에는 목련이 나무에서 피어나는 게 새겨지고 있는 듯 여겨진다.

신경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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