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이라크]<하>미국의 이라크 철수 전략

  • 입력 2005년 2월 2일 17시 48분


미국 해병대 특수부대 소속 케네스 쿠어 병장(19)은 최근 이라크 병사들로 구성된 소대를 이끌고 7개월 일정의 훈련과정에 돌입했다.

그의 임무는 티그리스 강 인근 기지에서 이라크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조언하는 것. 저항세력의 공격이 빈번한 모술 중심지를 지날 때마다 쿠어 병장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이라크 병사들의 임무와 위치를 지정한다.

미군의 이라크 철수전략(Exit Strategy)은 쿠어 병장과 같은 훈련교관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미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는 전했다. 이라크가 스스로 치안 유지 능력을 가져야 미군이 이라크를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군의 딜레마=미 브루킹스 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라크인의 92%는 미군을 ‘점령자’로 인식하고 있다. 미군의 존재가 치안 유지의 핵심이지만, 한편으로는 저항세력을 부채질하는 요인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슬람 수니파는 미군 주둔 및 철수계획 부재를 이유로 총선을 보이콧했다. 하지만 미군이 없었다면 총선 자체가 불가능했던 게 엄연한 현실이다. 게다가 미군이 당장 빠져나가면 힘의 공백으로 인한 내전 발생 우려도 있다.

가지 알 야와르 이라크 과도정부 대통령은 1일 “미군은 올해 말 이라크를 떠나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당장 떠나라는 말인가’라는 질문에는 “말도 안 된다”고 답변했다.

미군 전사자 수가 늘면서 미국 내 여론도 좋지 않다. 1월 말까지 이라크에서 사망한 미군은 1571명. 민주당 지도부인 해리 리드 상원 대표와 낸시 펠로시 하원 대표는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품위 있게 빠져나올 수 있는 구체적인 철수전략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훈련되지 않은 이라크군=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최근 이라크가 치안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27만1000명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현재 이라크 병력은 군경을 합해 12만 명 수준. 그나마 저항세력 소탕 작전에 투입해도 될 만큼 훈련받은 병력은 1만4000명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훈련 프로그램이 겉돌고 있다는 점. 통역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데다 생계를 위해 입대한 병력의 상당수는 저항세력과 총격전이 벌어지면 달아나기 일쑤다.

모술과 시리아 국경 사이에 위치한 팔라파 시는 지난해 가을까지 이라크 경찰 수백 명이 치안을 담당했지만 1월 말 현재 400명이 그만두거나 저항세력에 합류했다.

▽철수 시점 언제일까=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 주둔 병력을 점진적으로 철수시키면서 이라크군과 경찰에 치안을 맡기기로 비밀리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경찰 훈련생의 수를 2배로 늘리고, 준군사조직을 창설해 연합군 15만 명을 대체하는 단계적 철수 방안을 만들었다는 것.

그러나 구체적인 철수 일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라크의 미래를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점을 못 박으면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는 우려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이라크 총선을 앞두고 “이라크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동안 미국의 임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의 확산’이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이라크에 나타날 때까지는 미군을 완전 철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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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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