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美지성’…국제 펜클럽 美지부회장 수전 손택 타계

  • 입력 2004년 12월 29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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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 미국의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수전 손택 여사가 28일 타계했다. 향년 71세.

손택 여사는 골수성 백혈병을 앓아 오다 뉴욕의 슬론 케터링 기념 암센터에서 세상을 떴다.

1933년 뉴욕의 모피 거래상 집안에서 태어난 손택 여사는 5세 때 아버지가 사망한 후 계부 아래서 자랐다.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시카고대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뉴욕 문단에 데뷔한 뒤 소설과 수필, 평론 등 문학의 각종 장르를 넘나들었고 영화도 네 편 연출했다.

베스트셀러이자 한국어로도 번역된 ‘화산의 연인’과 2000년 전국도서상을 수상한 ‘미국에서’와 같은 소설을 남겼고, ‘해석에 반대한다’, ‘은유로서의 질병’, ‘사진에 관하여’ 등의 평론, 에세이집을 남겼다. 그의 저서는 3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1987∼89년 국제펜클럽 미국 지부 회장을 지낸 손택 여사는 이란 작가 살만 루시디가 ‘악마의 시’로 이란 종교당국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자 미국 문학계의 항의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손택 여사의 사회 참여는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반대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백인은 인류사의 암적 존재”라고 한 그의 발언은 미국 내에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한국과도 인연을 맺었다. 1988년에 서울을 방문해 김남주 시인 등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했다. 최근에는 ‘행동하는 지성’이란 별명에 걸맞게 ‘9·11테러’ 사태 이후 미국의 대(對)테러전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이성 잃은 유미주의자’, ‘강박적 도덕주의자’, ‘진지함에 대한 광신도’로 자처했지만 그는 세계가 인정하는 ‘뉴욕 지성계의 붙박이’,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였다.

손택 여사의 타계에 대해 세계 언론들은 “지난 반세기 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지성인을 잃었다”고 아쉬워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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