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엘바라데이 내쫓기’ 나섰다

  • 입력 2004년 12월 14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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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축출을 시도한 데 이어 유엔 산하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사진) 밀어내기를 시도하는 등 국제기구 지도자들과 잇따라 대립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국제기구 지도자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사실상 이를 주도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과 국제기구의 대립이 부쩍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일방주의와 국제기구의 다원주의가 충돌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미국의 눈엣가시=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을 퇴진시킬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그와 이란 외교관들의 전화 통화를 수십 건 도청해 왔음이 워싱턴포스트(WP) 보도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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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행정부 일부 관리들은 익명으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이란 핵 프로그램의 상세한 내용을 IAEA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고 고의로 은폐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와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갈등을 빚기 시작한 것은 2003년 2월. 이라크전쟁을 서두르는 미국에 대해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유엔 결의안을 채택하기 전에 무기 사찰을 우선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는 이라크전쟁 후에도 미국의 전쟁 명분이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이란 핵무기 개발 의혹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자는 미국의 강경 입장과 달리 신중한 접근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이집트 외교관 출신인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1997년 첫 임기를 시작해 2001년 9월 연임됐으며 내년 여름 2차 임기가 끝난다. 미국은 그의 3차 연임을 막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뜻 관철 쉽지 않아=엘바라데이 사무총장 밀어내기가 미국의 의도대로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까지 도청 자료에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이란에 편향되게 일을 처리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

그를 대신할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점도 미국엔 불리하다. 미 국무부는 수개월 전부터 IAEA 사무총장 후보를 물색해 왔다. 알렉산더 다우너 호주 외무장관과 함께 한국 2명, 일본 2명, 브라질 군축전문가 등 6명을 후보군으로 검토해 다우너 장관을 후보 1순위로 점찍었다.

하지만 35개 IAEA 이사국 대부분은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을 지지하는 상황이다. 일부 이사국은 그에게 3차 임기도 맡아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 행정부 내에서도 공개적인 퇴진 압력을 행사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입는 이미지 손상이 적지 않은 만큼 그의 교체 추진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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