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바닥 시신 뒤엉켜 ‘피의 지옥’…전격 진압작전 과정

  • 동아일보
  • 입력 2004년 9월 3일 23시 52분



3일 오후 2시5분경(현지시간) 러시아 특수부대가 진압작전을 마친 북(北)오세티야공화국 베슬란의 인질극 현장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인질들이 갇혔던 학교 체육관 바닥에는 그을린 시신 100여구가 뒤엉켜 있었다. 영국 I-TV 특파원은 ‘피의 강’ ‘피의 욕조’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러시아 특수부대가 유혈 진압을 벌인 것은 예상 밖의 초강수였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인질 710여명이 죽거나 다쳐 대가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어린 학생들이었다. 러시아의 과잉대응에 대한 국제적 비난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전격 진입=3일 오후 1시경 인질극 현장에서 6차례의 폭발음이 들렸다. 인질극 3일째의 팽팽한 대치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곧이어 러시아 특수부대와 테러범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학교 상공에는 ‘크로커다일(악어)’ 헬기가 선회하기 시작했다.
테러범들은 구조요원들이 20여구의 시신 수습을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한 직후 학교 주변을 향해 폭발물을 던지고 총격을 가했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은 전했다. 이 틈을 타 인질 30여명이 탈출을 감행했다.
이에 러시아 특수부대는 체육관 벽을 폭파시켜 탈출로를 만들며 진압작전에 돌입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면서 인질들이 탈출했고, 테러범들이 이들에게 사격을 해 우발적으로 구조작전을 벌였다”고 말했다.
건물 밖으로 뛰쳐나온 인질 중 어린이들은 속옷 외에는 옷을 거의 벗은 상태. 외신들은 35도를 웃도는 더위 때문에 어린이들이 옷을 벗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어린이들은 억류 도중 갈증에 시달려 소변을 받아 마시거나 옷을 짜 물기를 핥았다고 말했다.
▽극심한 혼란=최초 폭발 30분 뒤 체육관 지붕 일부가 붕괴됐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AP통신은 테러범들이 설치한 부비트랩과 몸에 두른 폭발물이 터지면서 지붕이 붕괴됐다고 전했다. 이때 숨진 인질들이 사망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오후 2시경 증원된 특수부대가 깨진 유리창문을 통해 진입해 테러범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일부 테러범은 특수부대에 끝까지 저항했고 나머지는 인질의 옷을 빼앗아 입고 인질들 틈에 끼어 베슬란 남쪽으로 도주했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은 전했다.
테러범들은 도주하면서 어린이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몇몇 목격자들은 여자 2명이 낀 일부 테러범들이 흰색 옷을 빼앗아 입고 인질들을 납치해 갔다고 전했다. 도주하지 못한 잔당들은 학교에 남아 끝까지 저항을 계속하다 진압됐다.
러시아 특수부대는 테러범들이 설치해 놓은 폭탄을 터뜨려 학교 주변은 폭발음과 총성으로 아수라장이었다. 화재도 발생했다. 진압작전이 시작된 지 2시간10분이 지나서야 생존한 인질들이 학교에서 모두 빠져나왔다.





▽희생 클 듯=오후 2시5분경 특수부대가 학교를 완전 장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작전 1시간 만이었다. 오후 2시반경에는 구급요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조 활동에 나섰다.
북오세티야 보건당국은 당초 부상자가 어린이 100여명을 포함해 400여명이라고 밝혔지만 외신은 이 수가 560명을 넘는다고 잇따라 보도했다. 부상자 중에는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FSB는 사망자 60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더구나 일부 학생들은 학교에 남아 끝까지 저항한 테러범 3명에게 억류되어 있고 주택가로 숨어든 테러범들이 군경과 대치하면서 제2의 인질극을 벌이거나 집단 폭사를 택할 수도 있어 사상자가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이 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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