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총선]이라크파병→테러역풍→失權

  • 입력 2004년 3월 15일 18시 41분


《테러가 선거 결과를 뒤바꿨다. 14일 실시된 스페인 총선은 당초 집권 국민당(PP)의 승리가 예상됐다. 적어도 11일 마드리드에서 연쇄 열차 폭탄테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테러 직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당은 야당인 사회노동당(PSOE)보다 4∼6%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폭탄테러의 배후가 알 카에다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표심은 “이라크에 파병한 젊은이들이 흘린 피의 대가가 이것이냐”며 국민당에 등을 돌렸다.》

이번 총선은 이라크전쟁을 적극 지지한 나라에서 일어난 첫 번째 ‘선거심판’이어서 국제정치적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집권당의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무엇보다 스페인 국민을 분노케 한 것은 테러를 바스크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ETA의 소행으로 몰아가려던 집권당의 행태였다.

끝까지 ‘ETA 범행의혹’을 포기하지 않은 국민당 정부는 ‘알 카에다-ETA 공모설’까지 내놓았다. 아나 팔라치오 외무장관은 선거일인 14일 BBC방송에 나와 “음흉한 테러분자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공모설을 제기했다.

이런 행태가 역풍을 불렀다. 분노한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몰렸다. 투표율은 4년 전 총선 때보다 훨씬 높은 77%를 상회했다.

사회노동당이 “정부가 이슬람 세력의 테러 관련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주효했다. 궁지에 몰린 국민당 총리 후보 마리아노 라조이는 “나도 국민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은 모른다”고 해명했으나 때는 너무 늦었다.

▽드러난 정황 증거들=ETA가 테러의 주범으로 드러났다면 바스크 분리주의에 강경책을 써온 국민당 정부에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집권당의 ‘기대’와는 달리 ETA는 처음부터 범행을 부인했다.

대신 투표 몇 시간 전에 테러가 자신들의 범행이라고 주장한 알 카에다측 비디오 테이프가 공개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테러 용의자로 검거된 모로코인 자말 주감(30)이 알 카에다 세포조직과 연루돼 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투표일에 공개된 스페인 법원 서류는 이 테러 용의자를 미국 9·11테러 공모죄로 수감 중인 에딘 바라카트 이마드 야르카스의 ‘추종자’로 규정했다.

▽테러와의 전쟁에 타격=스페인 집권당의 패배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이 15일 전망했다. 이 신문은 “총리에 취임하게 된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사회노동당 당수는 부시 대통령의 세계 전략을 비판하면서 승리했다”며 “특히 새 총리는 이라크에 주둔한 1300명의 스페인군을 7월까지 철수시키겠다고 공약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 신문은 “동맹국 지도자들은 부시 대통령과 가까운 것이 과연 현명한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다”면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선거결과에 대해 아무런 논평도 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라크에 파병된 스페인군은 전체 병력의 1%에 불과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스페인군이 철수한다면 이라크 파병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에도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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