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蘇 지도자들 ‘멋대로 통치’ 극심

  • 입력 2003년 11월 25일 18시 50분


그루지야 사태는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이 축출되면서 일단 진정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옛 소련 국가에서는 독립 후 10년이 넘도록 장기집권과 부정부패가 계속되고 있다. 개혁적이고 친서방적이라고 평가를 받는 지도자들도 ‘알고 보면’ 국내에서는 철권을 휘두르는 독재자인 경우가 많다.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 우상화=옛 소련 국가 중 가장 가난하고 폐쇄적인 투르크메니스탄은 국가지도자에 대한 개인우상화 때문에 ‘중앙아시아의 북한’으로 불린다.

외국인들은 수도 아슈하바트에 도착하면 “이곳이 지금 21세기인가”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시내 한가운데에 서 있는 높이 30m짜리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63)의 황금동상 때문이다. 이 거대한 동상은 하루 종일 360도 회전하며 시내를 굽어본다. 시내 곳곳에 그의 흉상과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니야조프 대통령이 철학 역사 문화에 대해 썼다는 ‘루흐나마’라는 책은 전 국민이 매일 읽는다. 지난해 그의 62회 생일을 맞아 3일 연휴가 선포됐고 모든 국민이 ‘경애하는 지도자’에게 축하편지를 올렸다. 그가 심장수술을 받고 담배를 끊자 흡연이 금지됐다.

1985년 공산당 제1서기가 된 후 사실상 20년 가까이 투르크메니스탄을 통치해 온 니야조프 대통령은 내각 수반도 겸하고 있다. 92년 99.5%의 지지로 당선된 후 선거가 아예 없어졌다. 99년 의회가 그를 종신 대통령으로 추대했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의 권력 세습=일함 알리예프 대통령(42)은 지난달 15일 대선을 통해 아버지 게이다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80)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았다.

국제 선거감시원들은 완전한 부정선거였다고 보고했다. 협박이 난무하고 가짜 표로 투표함을 채웠다. 부정선거에 항의해 수도 바쿠에서 일어난 항의시위는 강제 진압됐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아버지 밑에서 국가올림픽위원장과 총리를 거치며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아버지 알리예프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10년을 통치했다. 그러나 옛 소련 시절 국가보안위원회(KGB) 의장과 공산당 제1서기를 지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30년 넘게 알리예프 일가가 아제르바이잔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미스터 국민투표’ 우즈베키스탄 대통령=89년 공산당 제1서기가 된 후 14년째 집권하고 있는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65)은 95년과 2002년 국민투표를 통해 장기집권의 길을 다져놓았다.

선거제도를 간선에서 직선으로 바꾸고 대통령 임기도 5년에서 7년으로 늘리는 등 필요할 때마다 헌법을 마음대로 고쳤다. 올해 의회에서 ‘면책특권’까지 받아 그동안의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게 됐다.

옛 소련 시절의 무시무시한 공안기구들을 유지하고 있으며, 반대파에 대해서는 고문과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우즈베키스탄은 국제 언론단체들이 해마다 단골로 지정하는 ‘언론 탄압국가’다.

▽마피아 연루설 리투아니아 대통령=발트해 연안 리투아니아에서는 롤란다스 팍사스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의회도 대통령 탄핵을 추진 중이다. 사업가 출신으로 올해 1월 당선된 팍사스 대통령은 러시아 마피아 조직의 돈을 받아 대선을 치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은 옛 소련 국가 중 민주화와 시장경제가 가장 먼저 정착된 곳이다. 옛 소련 국가 모임인 독립국가연합(CIS)에도 가입하지 않았을 정도.

반면 경제범죄가 급속히 확산됐다. 90년대 발트3국은 동광(銅鑛)도 없으면서 세계적인 구리 수출국이 됐다. 러시아 마피아가 빼돌린 광물자원을 서방으로 수출하는 창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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