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爭]전기-인적 끊긴 도심 불길한 폭발음만

  • 입력 2003년 4월 4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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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바그다드가 13세기 몽골군에 이어 700여년만에 외국 군대의 진격을 눈앞에 두고 있다. 뉴욕타임스 BBC 등의 기자들이 4일 현지에서 전해온 폭풍전야의 바그다드 표정을 소개한다.》

3일 오후 9시(현지시간) 바그다드 전역이 갑자기 칠흑 같은 암흑에 잠겼다. 개전 이후 처음으로 정전이 된 것.

지난 2주일간 지겹도록 계속된 폭격 속에서도 북적대면서 ‘일상(日常)의 끈질긴 생명력’을 증명하던 거리는 수분만에 텅 비어 버렸다. 암흑 속에 시청 근처에서 일련의 강한 폭발음이 들려 왔다. 공항이 있는 남쪽에서 들리는 야포 소리는 바야흐로 전장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일깨워 줬다.

잠시 후 자체 발전기를 갖고 있는 부유층 거주지역과 일부 호텔에 불이 들어오면서 곳곳에 빛의 섬이 생겼다. 밤이 깊어 가면서 AK47소총을 든 군복 차림의 남자들이 다시 순찰을 돌았다. 시민들은 이날 예고 없이 찾아온 정전을 다가오는 격변의 예고편으로 실감하는 표정들이었다.

이에 앞서 3일 낮까지 바그다드 시민들은 외견상 평온을 유지한 채 피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비상통제도 없으며 식당과 시장 등은 계속 문을 열었다.

연합군의 폭격은 관공서들이 있는 서부 지역에서 점차 도심 쪽으로 옮겨갔으며 2일 아침 러시아워가 끝나 갈 무렵 무역박람회장에 몇 발의 미사일이 떨어져 축구장 규모의 폐허를 남겼다.

대통령궁과 관공서들이 들어서 있는 서부 지역에서 바트당 소속 무장 민병대가 하루 종일 모래자루를 쌓았다. 남쪽 교외로 향하는 도로 양편의 농장 지대에는 군인들이 나무 밑에 참호를 파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별다른 병력 이동도 눈에 띄지 않았다. 트럭과 경기갑차량들은 고가도로 밑에 그대로 멈춰 있다. 상당수 시민들은 집의 큰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 놓고 있었다. 부유층은 몇 달을 버틸 분량의 밀가루 쌀 콘 연료 기름을 비축해 놓고 있다.

상·하수도 공급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정수장이나 하수처리장, 병원 등은 모두 자체 발전기를 갖고 있다. 시민들은 1991년 걸프전 때 수주일 동안 전기와 상하수도 없이 견뎌야 했던 경험을 이번에는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들이었다. 당시에는 하수가 역류, 거리에 오물 냄새가 진동했었다.

시민들은 미군이 바그다드 바로 앞까지 진격해 있는 현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 시민은 “우린 그들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일일 브리핑을 하는 이라크 관리들의 자신감 있는 태도도 변함없었다.

한 주부는 “전투가 벌어지면 민간인들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집 안에 머물러 있으라는 미영 군의 주의를 들었다. 그러나 (이라크)TV에서 들으니 바스라에서 영국군이 집안에 머물러 있던 여자와 어린이들을 죽였다고 하던데 바그다드에서도 그런 일이 생길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라크 남부에서 바그다드로 진격하는 미군들과 동행한 기자들은 공병대가 부교를 건설하는 동안 주민들이 무심히 구경만 할 뿐 아무런 적대감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고속도로변에는 시장이 열리고 있었으며, 마을의 도로에는 버스와 트럭, 자가용 승용차들로 혼잡한 상황이었고, 카페와 식당들은 포장 음식을 팔고 있었다는 것.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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