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중동근로자들-"전쟁 언제쯤 끝나 일터로 돌아갈지…"

  • 입력 2003년 3월 23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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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크전 개전 나흘째인 23일 오전 5시50분. 한 무리의 승객이 어스름이 채 걷히지 않은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15번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이집트 카이로를 출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를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들 승객은 한국인 102명과 아랍인 등 외국인 71명. 이들의 얼굴에는 ‘사지(死地)’를 탈출했다는 안도감보다는 언제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이들이 이날 타고 온 KE952 여객기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중동노선을 운항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마지막 항공편. 대한항공은 전쟁으로 인해 이 노선을 최소한 한 달간 폐쇄하기로 했다.

이날 들어온 한국인의 대부분은 이란,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등 이라크 주변 국가에서 근무하는 상사원과 건설회사 직원들.

미군의 전시지휘부가 설치된 카타르의 건설현장에서 철수한 현대건설 소속 근로자 5명은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아랍에미리트와 이란 등지에서 토목건설 공사를 벌이고 있는 A건설 대표 김모씨(59)는 10여명의 직원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뒤 마지막으로 귀국했다.

그는 “평소 중동을 자주 다니지만 두바이공항의 검색이 이번처럼 까다로웠던 적은 없었다”며 “신발은 물론 혁대까지 모두 풀고 검사를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16일 이란의 테헤란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이라크와 수 차례 전쟁을 치렀던 이란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며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현지 교민들의 후송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중동지역에서 근무하던 대한항공 직원 20여명도 모두 철수했다. 이들은 “아직도 위험지역을 빠져나오지 못한 한국인들이 많을 텐데…”라며 걱정하기도 했다.

두바이에서 머물던 이 여객기의 사무장은 “두바이에서는 연일 반전시위가 계속된 것 외에는 별다른 전운을 느끼지 못했다”며 “중동노선이 임시 폐쇄된다는 소식 때문에 현지 항공권 예약률이 평소보다 높았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중동노선 임시 폐쇄에 따라 앞으로 중동을 오가려면 당분간 타이항공이나 아랍에미리트항공 등 외국 항공사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와 별도로 현지 교민들의 항공 수요가 늘어날 경우 특별 전세기를 급파할 방침이다.

인천=박희제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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