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이 남긴것]보통여성 3인의 인생역정

  • 입력 2002년 9월 2일 18시 32분


맥밀란
《9·11테러는 개인의 삶 속에 짙은 명암을 남기고 있다. 그 후 1년. 9·11 테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보통사람’의 역정은 어떠했을까.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9일자)의 특집에서 지난 1년을 살아온 미국과 파키스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여성 3인의 삶을 간추려본다.》

▼WTC 마지막 생존 미국인 '맥밀란'▼

9월 11일 오전 10시28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빌딩이 자살폭탄테러로 붕괴되던 그 순간 64층에서 일하던 지넬 구스만 맥밀랜(31)은 비상계단을 정신 없이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 후 그가 기억하는 것은 굉음과 화염, 그리고 암흑 뿐.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살아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오른쪽 다리가 잔해더미에 눌려 꿈쩍도 할 수 없었지만 다른 곳은 별 이상이 없었다. 이후 26시간 만에 참사현장에서 최후의 생존자로 구조됐다.

그로부터 1년. 그의 삶은 일상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말 TV로 중계되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고 줄곧 마음에 걸렸던 불법체류의 신분문제도 이민국(INS)의 관대한 처분 덕에 말끔히 해결됐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예전 같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길 좋아했는데 이젠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남편이 출근한 뒤 텅 빈 아파트에 남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하루를 보낸다. 구조된 후 한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가 자궁암과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지만 그는 의사들이 처방해준 약을 복용하지 않고 있다. “모든 것은 다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척과 친구들은 열정과 활기에 넘치던 그의 옛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다.

▼파키스탄 이슬람 여고생 '사나 샤'▼

사나 샤

파키스탄의 여고생 사나 샤(16)는 요즘 혼란스럽다.

이슬람 경전 코란을 정독하지만 미국의 유명 음악케이블방송 MTV도 즐기는 그는 자신을 양쪽 문화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국제시민(global citizen)’이라고 자부해왔다.

첫 충격은 9·11테러 참사. 그는 테러리스트들의 만행에 분개하며 희생자들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아랍인들에 대한 폭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큰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좋아했던 미국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뉴욕 시민단체가 주관한 청소년 ‘평화캠프’에 참석키 위해 뉴욕의 존 F 케네디공항에 내렸을 때의 일이다.

“백인들은 세관을 무사 통과했지만 아랍계 승객들은 두 손을 올린 채 몸을 샅샅이 수색 당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모두가 수색대상이 돼야 하는데….”

하지만 그는 파키스탄 내 격렬한 반미감정과 이슬람 근본주의 물결 또한 이해하기 힘들다.

오사마 빈 라덴을 영웅시하고 이슬람무장단체들을 지지하는 학우들을 볼 때마다 샤양은 더욱 걱정스럽다

샤양은 평화가 결국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그가 사랑하는 두 문화권은 자꾸만 충돌로 치닫는 듯하다. 요즘 우울한 이유다.

▼아프간 두번째 女장군 '무하자이'▼

무하자이

아프가니스탄 카불대 법대 출신의 카돌 무하자이는 14년 동안 공군에 몸담고 있다가 카불에 입성한 탈레반 정권에 의해 96년 강제 예편됐다.

이후 그의 삶은 눈물겨웠다. 남편은 행방불명됐고 혼자서 두 명의 아들과 친정어머니, 그리고 조카 두 명을 둔 여동생을 대신해 방 두칸짜리 아파트에서 생계를 꾸려야만 했다. 삯바느질, 부품 수리, 청소. 살기 위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 그 와중에서도 남몰래 응접실을 개방해 동네 소녀들을 가르쳤다. 탈레반에 대한 그만의 저항이었다.

하지만 이젠 숨어서 가르칠 필요도, 저항할 필요도 없다. 아프간 정부는 국내 최초의 여성 낙하병이기도 한 그를 4월 장성으로 진급시켰다.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 그의 일은 공군의 훈련과정 담당. 22년간 계속돼온 전쟁은 군의 기간시설과 장비를 피폐시켰기 때문에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상당수 군인은 아직도 군화조차 없는 실정. 오전 4시반에 기도와 집안청소로 일과를 시작하는 그의 하루는 숨가쁘게 돌아간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희망과 활기가 넘쳐났다.

“수많은 여성이 피를 흘리며 처형당했던 카불스타디움에서 내 진급 환영행사가 열렸다. 아프간에는 지금 강한 바람이 일고 있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바람은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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