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그후 1년]<4>‘9·11세대’는 말한다

  • 입력 2002년 9월 1일 17시 59분


미국의 차세대 주역인 대학생들이 조지타운대 교정에서 피터 벡 실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함께 9·11테러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 워싱턴=한기흥특파원
미국의 차세대 주역인 대학생들이 조지타운대 교정에서 피터 벡 실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함께 9·11테러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 워싱턴=한기흥특파원
《‘9·11세대.’ 미국에서 9·11테러를 겪은 대학생 등 젊은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지난해 11월 12일자 커버스토리를 통해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면서 졸업 후 진로와 영화 음반 등에나 관심을 갖고 있던 젊은 세대가 9·11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 주목된다”면서 만들어낸 용어다. 서구 위주의 역사교육을 받은 기성세대와는 달리 중국 이슬람 아프리카 등의 역사까지 배우면서 성장해 비(非)서구문화와 문명에 대해서도 잘 안다는 9·11세대는 9·11테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좌담을 통해 이들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좌담은 지난달 26일 워싱턴의 조지타운대에서 이 대학 학생 4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관련기사▼

- 1-①그라운드 제로, 뉴욕 맨해튼
- 1-②재건 꿈꾸는 아프간 카불
- 2-달라진 미국, 미국인
- 3-이슬람은 말한다

사회는 동아일보 해외 칼럼니스트인 피터 벡(미국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이 맡았다. 조지타운대 학생만으로는 다양한 의견이 안 나올까 봐 조지워싱턴대 학생 1명과 아메리칸대 학생 2명을 28, 29일 각각 인터뷰해 이들의 얘기도 포함시켰다.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

에밀리 선(19)

▽에밀리〓수업 시간 중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 사무실이 뉴욕 세계무역센터 바로 옆 건물이었고 아버지와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아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다. 반면 부모님들은 펜타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조지타운대에 재학 중인 내가 걱정돼 애를 태우셨다고 한다. 아는 사람들이 여러 명 숨져 나도 3건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했다.

▽스콧〓테러 소식을 들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신학 수업시간 중이었다. 이후 수업이 모두 취소됐지만 나는 도서관에서 펜타곤이 불타는 광경을 지켜보며 일본어 공부를 했다. 내가 TV 뉴스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것은 인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그보다 더한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9·11을 마치 지구가 산산이 박살나는 것처럼 간주할 수 있을 만큼 미국인들의 인명이 특별히 더 고귀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9·11 이후 미국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가.

저메인 테일러(27)

▽저메인〓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보는 태도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비행기에서도, 거리에서도 미국인들은 특히 외국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별 변화가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미국인들의 심리엔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수아드〓나는 학교에서 별 차별을 받지 않지만 내 아버지는 시리아 출신의 아랍계라는 이유로 고통을 받아 왔다. 아파트는 물론 직장인 병원에서도 아버지는 동료들로부터 냉대를 받는다고 한다. 공항에선 몇 시간씩 다른 승객들과 별도로 검색을 당하기도 하셨다. 이 같은 차별에 맞서 미국 내 아랍계는 단결하고 있다.

크리스티 애덤스(23)

▽크리스티〓이슬람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도 커졌다. 내가 듣는 아랍어 수업 시간엔 육군에서 2명, 공군에서 1명이 공부하고 있고 은퇴한 국무부 관리도 1명 있다. 1년 전만 해도 아랍어 수업을 듣는 공무원들은 거의 없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많이 약해졌는데….

▽조엘〓나는 테러와의 전쟁은 완전한 실패라고 생각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9·11 직후 오사마 빈 라덴 색출을 비롯한 여러가지를 약속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것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특히 그가 북한 이라크 이란 등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은 최악의 잘못된 표현이다.

수아드 알 카와스(20)

▽수아드〓누구보다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악의 축’이라는 어리석은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몹시 황당했다.

-부시 행정부는 대 이라크 공격을 검토 중인데….

▽크리스티〓현재로선 미국에 대한 이라크의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지 않은가. 지나친 것 같다.

▽수아드〓어리석은 일이다. 후세인은 팔레스타인을 재정적으로 돕고 있기 때문에 만일 미국이 이라크를 친다면 전체 아랍세계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고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이라는 중동의 두 동맹국을 잃게 될 것이다.

▽스콧〓나는 이라크 공격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냉정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를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추가 테러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가.

▽에밀리〓걱정이 된다. 아버지가 9·11 1주년이 되는 11일 비행기 여행을 할 일이 있다고 해 다른 날로 날짜를 바꾸도록 했다.

▽저메인〓걱정하지 않지만 충분히 대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조엘 밀러(19)

▽조엘〓온 나라가 겁을 먹고 있지만 추가 테러가 발생하면 발생하는 것이지 현재로는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따라서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부시 행정부 출범 후 더욱 고조되고 있는 반미감정에 대해선….

▽도미니크〓나는 반미감정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을 탓하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는 항상 미국의 방식만이 옳고 외국의 방식은 그르다고 외국에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외국인들이 미국을 싫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크리스티〓미국이 외교정책을 바꿔야 한다.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관계가 원만치 않은 것은 미국이 그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테러 검색을 강화하는 데 돈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더 고귀한 일을 하는 데 돈을 써야 한다.

-9·11 이후 미국에선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한 민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점점 ‘닫힌 사회’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크리스티〓미국은 과거에도 국가 위기시 민권을 제약했다가 이를 극복했던 전례가 있다. 최근의 상황도 이 같은 순환의 일부분이길 바란다.

▽스콧〓미국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이 자유를 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유를 상실케 된다면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만약 테러와의 전쟁이 확대돼 정부가 대학생들을 징집할 경우 전쟁터에 나갈 것인가. 베트남전 세대들은 징집을 기피하기도 했는데….

도미니크 아돌리노(20)

▽도미니크〓징집당하는것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나는 징집되기 전에 자원해서 입대하겠다.

▽조엘〓집에선 내게도 군에 갈 것을 요구할 것이고 나는 이에 따를 것이다.

▽저메인〓나는 전쟁터엔 가지 않겠다. 내게는 가족을 포함해 테러와의 전쟁보다 소중한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시민으로서 추가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다면 그것이 특정인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아닌 한 할 생각이다.

-아랍권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은데 사귀는 사람이 이슬람교도라면 결혼하겠는가.

스콧 윌버(19)

▽스콧〓내가 사귀는 여학생이 알라를 믿는다고 해서 결혼을 못할 이유는 없다.

▽도미니크〓사실은 지난해 중동계 여학생을 사귀었다. 이슬람교도와 미국인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이슬람 국가 쪽이 더 심한 것 아닌가.

▲스콧 윌버(19) 조지타운대 아시안스터디 2학년

-캘리포니아주 출신. 고교시절 학교 야구팀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의 영향으로 일본 음식과 문화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워싱턴의 한 일본음식점에서 생선초밥을 만드는 '스시 맨'으로 아르바이트중. 일본 전문가가 돼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꿈.

▲수아드 알 카와스(20) 조지타운대 행정학 3학년

-부모가 모두 시리아인으로 장차 시리아로 돌아가 생활하고 싶어한다. 워싱턴과 버지니아 주의 여러 아랍-아메리칸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아랍계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옷가게 점원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크리스티 애덤스(23) 조지타운대 아랍학 석사 1년차

-이스라엘에 친척이 있어 어려서부터 중동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학부 시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해 일하면서 이들의 곤경에 눈을 떴다. 장래의 계획도 난민 구호운동가가 되는것. 현재는 학비 조달이 가장 큰 걱정.

▲에밀리 선(19) 조지타운대 국제경제 3학년

-중국계. 국제문제에 관심이 많아 외교관이 되는 것이 꿈. 여름방학 동안 미 의회의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에 따라 한국을 방문해 정몽준(鄭夢準)의원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한국경제에 큰 인상을 받았다고. 중국어 교사로 아르바이트 중이다.

▲도미니크 아돌리노(20) 아메리칸대 그래픽아트 2학년

-한때 운동선수가 되고 싶어했으나 진로를 바꿨다. 하키와 야구를 무척 좋아한다. 스포츠를 즐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표. 데이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짠돌이'여서 용돈은 한달에 100달러(약 12만원) 정도밖에 쓰지 않는다.

▲조엘 밀러(19) 아메리칸대 역사학 2학년

-메릴랜드주의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부모 덕분에 학비 걱정은 하지 않는다. 미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될 생각이지만 장래 목표가 수시로 바뀐다. 스포츠와 대중음악을 좋아한다. 전공을 공부하느라 너무 바빠 독서를 폭넓게 하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다.

▲저메인 테일러(27)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3학년

-힙합 뮤직과 록 뮤직에 심취해 있다. 고교 때는 우등생이었으나 지난 학기 평점이 4.5만점에 3.0에 그쳐 요즘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 엄격한 가정에서 자라 고교 졸업 후 자유를 만끽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했다. 최고경영자가 꿈.

정리〓한기흥 워싱턴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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