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가다]<6>정성과 친절

  • 입력 2002년 5월 6일 17시 56분


《오이타(大分)시 분고차야(豊後茶屋)는 규돈(일본식 쇠고기덮밥), 도시락 정식 등을 파는 작은 식당이다. 이 식당은 최근 도시락 정식의 반찬으로 쓰게모노(일본식 단무지) 대신 간단한 계란 반죽이나 소시지를 준비했다. 외국인들의 경우 달착지근한 쓰게모노가 입에 안 맞아 대부분 남기기 때문이다. 이 식당 주인 사토 나쓰코(佐藤奈津子·63·여)는 “일본식 음식이라고 해서 외국인들이 안 먹는 반찬을 내놓기보다 이왕이면 즐길 수 있는 반찬을 마련키로 했다”면서 “먹는 것이 맘에 들어야 편안한 관광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작은 친절’친절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일본은 월드컵을 계기로 눈에 드러나지 않는 작은 친절을 한층 강화하는 운동이 조용히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한 여관에서 손님을 친절하게 맞고 있다. 사진제공 아사히신문

오이타시는 ‘작은 친절 생각하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돈과 노력이 많이 들어야 가능한 ‘눈에 띄는’ 친절보다 규모나 범위는 작지만 시민들이 스스로 할 수 있고 관광객들의 피부에도 와 닿는 친절에 더 신경을 쓰자는 것이다.

오이타현 월드컵추진국 관계자는 “대규모 환영 이벤트장이 아닌 뒷골목 음식점에서도 월드컵의 기쁨과 설렘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성과 친절’은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지만 경기장이나 교통편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월드컵조직위나 행정관청도 그냥 지나치는 수가 많다. 그 공간을 시민 개개인과 업소의 자발적 참여로 메운다는 것이다.

후쿠오카(福岡)에 사는 여대생 이타바시 도모코(板橋知子·23)는 올 초부터 수업이 끝난 뒤 2∼3시간씩 하카타(博多)역에서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사람들에게 열차편을 안내하고 있다. 그는 “하카타역은 매우 큰 역이라 열차를 갈아 타기가 어렵다”면서 “친절한 일본인의 모습도 보여주고 한국어도 연습할 겸 해서 길 안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벳푸(別府)시의 한 문구점에서는 최근 ‘영수증 챙겨주기’ 운동을 하고 있다. 문구점 직원 모리야마(森山·25·여)는 “외국인들이 귀국 후 출장비 정산 등에 필요하리라 생각해 100엔 미만이더라도 영수증을 꼭 챙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숙박업소 주인들에 대한 교육과 업소내 정보기술(IT) 환경 정비도 빼놓지 않고 챙겨야 할 부분이다. 외국인들이 문화의 차이와 의사 소통의 장애로 짜증을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니가타(新潟)현은 최근 숙박업자들을 대상으로 연수회를 가졌다. ‘외국인이라고 특별히 대할 것이 아니라 평소대로, 마음이 편해지도록 접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교육의 요지였다. 이 밖에 나라별 예절과 습관, 문화의 차이 등에 대한 세미나도 가졌다.

시즈오카(靜岡)현은 3월부터 현내 여관과 호텔 등을 대상으로 업소당 100만엔(약 1000만원)의 IT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아무리 친절하게 접대해도 기본 시설이 미비할 경우 “돈 안 드는 서비스만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 당초 50개 업소에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었으나 신청자가 많아 80여개 업소로 늘릴 전망이다.

시즈오카현은 또 여관 업자들의 요청에 따라 ‘욕탕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몸을 씻을 것’ 등 일본식 목욕 문화와 화장실 문화에 대한 안내문을 만들어 외국인에게 배포하기로 했다. 외국인들이 낯선 일본식 목욕탕과 화장실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한 것.

J2리그 오이타 연고팀인 트리니타는 경기가 있는 날 아침마다 전 선수와 스태프가 오이타역 등 시내 각 역 앞에 나와 월드컵 홍보와 외국인 안내를 하고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캐나다에서 관광차 온 브라이언트(38)는 “선수들이 친절하게 길 안내와 간단한 지역 설명을 해줘 고마웠다”며 “축구와 관광이 한데 어우러진 듯한 모습이 깊은 인상을 줬다”고 말했다.

오이타현 월드컵추진국에서 일하는 한국인 김동건(金東建·27)씨는 “97년부터 현청사에 월드컵추진실이 설치될 정도로 많은 준비를 해 왔다”며 “친절 정성 등과 같이 조직과 명령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발적 노력으로 이뤄지는 작은 친절과 정성은 대회가 끝난 후에도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메룬팀 훈련캠프 차릴 오이타현 나카쓰에촌▼

◀카메룬팀이 훈련캠프를 차릴 나카쓰에촌 초등학생들이 지난달 11일 학교 앞에서 카메룬팀을 응원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카메룬 국기를 흔들고 있다.

‘1300명의 월드컵.’

이탈리아, 멕시코 등의 경기가 열리는 오이타(大分)현 지역 언론인 ‘오이타 합동통신 신문’이 지난달 말부터 시작한 독특한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나카쓰에촌 분전기(奮戰記)’란 소제목을 달고 있다. 오이타현 나카쓰에(中津江)촌 다이오 스포츠센터에 훈련 캠프를 차릴 카메룬팀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려는 촌민들의 노력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인구가 적은 편인 나카쓰에촌 주민들은 ‘큰 손님 맞이’를 위해 누구나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있다.

지난달 25일자에 실린 ‘국제파 원아들’이란 기사는 프랑스어 배우기에 몰두하고 있는 나카쓰에 보육원 원아들을 다루고 있다.

“당신 이름은 무엇입니까?”

“내 이름은 ○○입니다”

4, 5세 어린이들이 ‘완벽한’ 발음으로 프랑스어를 따라 배우고 있다며 아이들에게까지 번진 뜨거운 월드컵 열기를 전하고 있다.

같은 달 26일자에 실린 ‘공사다망한 다이오 스포츠센터 직원들’이란 기사는 “카메룬 팀을 맞기 위해 센터 직원들이 휴식도 잊었다”고 분주한 마을 풍경을 다뤘다.

나카쓰에촌 사람들이 월드컵 기간 중 장인정신을 발휘해 지역 발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노력도 소개하고 있다.

‘식사준비 착실하게’란 특집기사에 등장한 다이오 스포츠센터 직원 미야케 다카히코(20). 그는 선수들의 식성에 맞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스위스 피츤 마을을 찾아 독일식 정통 햄소시지 조리법을 배우는 등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이 신문은 “미야케씨는 오늘도 보다 맛있는 소시지를 위해 분투하고 있다”며 기사를 끝맺었다.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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