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빈 라덴 9·11테러언급 테이프 공개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0시 59분


오사마 빈 라덴이 9월11일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을 계획했다는 사실을 추정케 하는 비디오 테이프가 13일 미국 국방부에 의해 공개됐다.

빈 라덴은 이날 아랍어를 영어로 번역한 약 1시간짜리 비디오 테이프에서 뉴욕 세계무역센터 파괴를 위한 작전계획과 예상되는 피해자 수 등을 설명했다.

이 테이프에 따르면 테러범들은 순교를 위해 미국으로 가라는 빈 라덴의 지시를 받았지만 비행기에 탑승직전까지 작전의 내용은 몰랐던 것으로 돼 있다. 테이프에는 빈 라덴이 당시 테러공격의 내용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내용은 있지만 그가 공격을 주도했다는 것을 명백히 인정하는 대목은 없다.

이와 관련, 영국 등 미국의 맹방과 중동지역 국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영국과 파키스탄 등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맹방들은 테러 공격에 책임 있는 자들을 뿌리뽑기 위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정당화해주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반면 중동지역의 많은 아랍인들은 이 테이프가 빈 라덴의 범행이라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조작됐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테이프는 지난달 하순 미국 정보당국이 잘랄라바드의 한 민가를 수색해서 입수한 것으로 11월9일 녹화했다는 표시가 붙어있다. 미국 국방부는 오사마 빈 라덴이 9.11테러공격을 계획했음을 보여주는 비디오테이프를 13일 공개했다.

이 테이프는 칸다하르에 있는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빈라덴이 한 방문객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을 녹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은 테이프에 녹음된 대화 요지.

△빈 라덴= 우리는 빌딩의 위치에 근거해 적들의 사상자 수가 얼마나 될 것인지 미리 계산했다. (비행기가) 부딪힐 부분이 3-4개층 정도일 것으로 계산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 방면의 내 경험으로 볼 때 비행기 연료가 타면서 나오는 화염이 건물의 철골 구조를 녹이고 그에 따라 비행기가 충돌한 부분과 그 윗 부분만 무너지리라고 예상했다. 이것은 우리가 희망했던 모든 것이다

△셰이크(신원 미확인)= 알라를 찬양할지어다.

△빈 라덴= 우리는 이 일이 그날 실행되도록 통보했다. 우리는 그날 일을 마치고 라디오를 켰다. 우리 시각으로 오후 5시30분. 나는 아흐마드 아부-알-카이르 박사와 함께 앉아 있었다. 곧 바로 비행기 1대가 세계무역센터(WTC)에 충돌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워싱턴에서 나오는 뉴스에 라디오 채널을 맞췄다. 뉴스가 계속됐으나 끝까지 공격이라는 언급은 없었다. 그들은 뉴스 말미에 비행기 한대가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을 따름이라고만 보도했다.

△셰이크= 알라를 찬양할지어다.

△빈 라덴= 잠시 후 그들은 또 다른 비행기 1대가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다고 발표했다. 이 뉴스를 들은 형제들이 열광했다. 이집트 패밀리(알-카에다의 이집트조직을 지칭) 소속의 무하마드(아타)가 행동그룹의 책임을 맡았다.

△셰이크= 비행기가 커다란 건물에 충돌하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단한 일이다. 그는 조직내에서 신앙심이 깊은 인물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그는 순교자가 됐다. 그의 영혼에 알라의 축복이….

△빈 라덴= 작전을 수행한 형제들이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은 자신들이 순교 임무를 띠고 있다는 것 뿐이었으며 우리는 그들 각자에게 미국에 가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작전에 대해 어떤 것도, 심지어 한 글자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훈련을 받았고 우리는 그들이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 작전내용을 그들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비행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알지 못했다. 한 그룹 소속의 인물들은 다른 그룹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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