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인촌기념강좌]고르바초프에 듣는다

  • 입력 2001년 11월 19일 18시 17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초청 ‘제17회 인촌 기념강좌’가 고려중앙학원 고려대학교 동아일보사 공동 주최 및 고려대 정책대학원 주관으로 19일 오후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렸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세계정세와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과거 한소 수교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관계의 미래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선각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7년 창설된 인촌기념강좌는 그동안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조지프 나이 미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센터소장 등 세계의 지도자와 석학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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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촌기념강좌 표정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양극체제는 심각한 군비 경쟁을 이끌었고 이로 인해 세계는 적대감과 불신, 공포로 가득 차게 됐다. 또 20세기 말로 접어들어 세계가 이룩한 급속한 산업 발전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게만 정상적인 삶을 보장하고 나머지는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는 인류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다.

급속한 산업화의 결과로 지구 환경문제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환경이야말로 21세기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여기에 테러와 금융 범죄가 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한 국가가 이런 문제들에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모든 국가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균형정책' 남북 모두에 도움

양극체제로는 이러한 과제 해결이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80년대 말) 구 소련은 개혁에 착수했고 개혁 개방을 외치고 나온 것이다. 그 결과로 세계의 냉전이 종식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의 9·11 테러사건은 새로운 국제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는 일이었다. 테러사건 이후 국가 간 공조체제가 잘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되며 점진적으로 계속 발전해 새로운 국제 질서를 형성해야 한다.

냉전 종식 이후 새로운 국제 질서가 등장했고 환경과 빈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최근 몇 년 동안 ‘반(反) 세계화’ 운동이 널리 일어난 것에서 보듯 세계화가 전 세계의 이런 모순들을 증폭시켰다고 볼 수 있다. 국가 간 빈부격차는 더 커졌고 이는 국제적 금융위기에서 잘 드러났다. 냉전 이후 이를 시정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새로운 질서는 더 공정하고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어려운 과업이다. 냉전 이후 1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세계가 앞으로 10년을 보낸다면 인류에게는 어떠한 가능성도 있을 수 없다.

냉전 이후 사람들은 강대국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기대했다. 특정 국가가 주도하는 신질서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의 경험이 보여주듯 그런 신질서는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한 대학교에서의 연설에서 “미래에는 한 국가가 중심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질서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40여년 전에 한 말이지만 바로 지금의 현실을 반영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시절처럼 미국 주도의 질서는 전 세계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일주일 전 한 포럼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났을 때 그도 이 점을 시인한 바 있다.

▼동북아 대화채널 모색할 때

이제 남북한 통일문제를 살펴보자. 냉전은 동북아 지역에 구 소련과 미국의 대립, 중소 마찰, 대만 문제 등 힘겨운 유산을 남겨 놓았다. 그중 가장 심각하고 위험한 문제는 한반도 분단이다.

동북아 지역의 긴장은 80년대 후반에 와서야 냉전구조 해체와 함께 급격히 호전됐다. 구 소련의 대(對) 한반도 정책을 비롯한 대 동북아 정책도 근본적으로 수정됐다. 이 새로운 정책은 타국의 이익을 고려하는 동시에 자국과 타국의 상호 이익을 고려해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소 수교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한중 수교가 이뤄졌고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남북대화를 실현하는 촉진제가 됐다.

통일은 궁극적으로 남북 당사자간의 문제다. 또한 통일문제는 주변의 여건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러시아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의 국제적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2+4(남북한과 미 일 중 러)’의 6자회담이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통일은 곧 이런 상황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다. 통일 과정의 적절한 시기와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남북간 이해관계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추진하는 햇볕정책이 현명하며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나는 한국 정부가 통일에 대해 장기적 안목에서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고 본다. 통일은 인위적으로 서둘러도, 너무 늦어져서도 안된다. 현재 한국 내에서 통일에 관한 대화가 많이 진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나 대화는 바람직하지만 그 속에 있는 진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 너무 열정적이어도 진리에서 벗어나기 쉽다.

이 때문에 통일 논의에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규칙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남북간의 이해관계가 고려돼야 하며 대화가 선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은 많은 정치적 문제를 야기한다. 남북간뿐만 아니라 대내외적인 문제도 작용한다. 통일은 정쟁이나 당쟁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

러시아는 이웃나라인 남북한이 하나로 통일돼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번영의 요소로서 국제무대에서 확고하고 자주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남북관계에 우호적인 국제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러시아는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지렛대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염려를 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자국의 정치 군사적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적국이나 불량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 이웃에 강력한 경제력을 갖춘 인구 7000만의 새로운 거대 국가가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에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러시아는 이런 이웃과의 확고한 협력관계를 기대한다.

<정리〓이철희·민동용기자>klimt@donga.com

▼고르바초프는 누구▼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70)은 미소 냉전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연 주역이다. 85년 소련 최고지도자가 된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추진해 러시아와 동유럽의 민주화를 앞당겼다. 또 90년 한소 수교를 이루고 중소, 일중 관계를 개선시키는 등 한반도와 동북아의 질서에도 큰 변화를 주었다.

독일 통일을 이끌어내고 냉전체제를 해체한 공로로 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자신이 추진한 개혁의 결과로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실각하는 정치적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역사의 진보와 자신의 권력을 맞바꿨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96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등 몇 차례 정치일선 복귀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99년에는 평생의 반려이던 라이사 여사가 타계하는 등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는 현재 고르바초프 재단과 국제녹십자사 총재를 맡아 환경문제와 국제현안 해결에 힘을 보태는 한편 전 세계를 다니며 강연과 집필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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