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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9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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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부장〓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대한 공습을 계속하고 있다. 탈레반이 빈 라덴을 비호하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아프간이 미국의 공격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공습의 성격과 정당성 여부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하자.
▽소진철 전 대사〓이번 테러사건은 미국이 경험한 진주만 폭격의 희생이나 한국전쟁의 희생 등 그 어떤 경우보다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 가장 많은 희생을 초래한 비극이었다. 따라서 미국이 응징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미국 시각에서 보면 그들 표현대로 정당방위의 측면이 있다고 본다. 종교를 초월해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응징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테러를 자행한 범인이 아직까지 노출되지 않고 있다. 범인을 은닉해준 국가가 체포에 협조하지 않으면 범인의 체포 또는 응징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미국의 공격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일부 이슬람권 美협조 이례적▼
▽이희수 교수〓테러에 대한 응징이라는 인류 보편성의 차원에서 보면 정당성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문제는 테러와의 전쟁 방식에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앞서 빈 라덴의 명확한 범죄 증거를 국제사회에 제시했어야 했다. 기존 국제법 절차나 유엔 등의 국제기구를 통한 응징과 처벌을 피하는 대신 미국은 성급하게 가상의 적을 설정해 보복하는 방식을 택했다. 때문에 이슬람 세계는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으며 이번 전쟁이 잘못될 경우 이슬람 세계를 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소 전 대사〓미국이 완벽한 증거를 대지 못한 것은 사정상 부득이한 측면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번 테러사건은 예상된 사건이 아니라 돌발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대해 아마 유사 이래 이처럼 국제사회가 호응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중동 문제인데도 이슬람 국가들이 별 반발 없이 협조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방 부장〓어쨌든 미국은 ‘강력한 보복’을 선택했다.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지형과 끈질긴 저항 역사를 가진 민족성, 이슬람권의 동조 현상 등으로 ‘제2의 베트남전’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결말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소 전 대사〓미국이 빈 라덴을 제거하고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까지만 목표를 둘지, 아니면 다른 테러 집단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국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다. 그러나 정황상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강경 노선을 추구하는 국방부측 의견을 받아들여 탈레반 정권의 붕괴까지를 목표로 설정하고 이에 준하는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하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따라서 미국은 빈 라덴을 체포하든, 사살하든 비교적 짧은 시간에 목표를 달성하고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뒤 전쟁을 끝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1월 17일부터 이슬람의 금식월인 라마단이 시작되기 때문에 미국이 이 기간까지도 전쟁을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교수〓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번 전쟁은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이지 이슬람과의 전쟁이 아니라며 명확하게 성격 규정을 했다. 빈 라덴과 그의 세력을 비호하는 텔레반 정권만을 붕괴하겠다는 의도이며 이 같은 명분 때문에 이슬람권도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잠정적인 동조를 하고 있다. 만약 탈레반의 붕괴에서 더 나아가 이라크나 다른 급진 단체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면 제2의 베트남전과 같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방 부장〓그러나 빈 라덴은 미국의 공습 이후 비디오 성명을 통해 80년 이상 이슬람이 받은 모욕을 언급하며 이슬람을 대표해 미국과의 전쟁에 나섰다고 주장하는 등 자신이 이슬람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가. 또 이슬람권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북부동맹 일시적 연대 그칠듯▼
▽이 교수〓빈 라덴은 이슬람권에서 실질적으로 지지를 대부분 상실했다. 팔레스타인 내 일부와 탈레반을 제외하고는 그에게 동조하는 세력은 없다. 그는 이슬람을 대표한 전쟁이라는 명분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전술적 카드로 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소 전 대사〓동감한다. 일각에서 탈레반 정권과의 전쟁 이후 확전을 예상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미국의 전술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탈레반이 무너지면 전쟁은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방 부장〓탈레반이 붕괴된 뒤 북부동맹이 대체세력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과거 집권시절 무능과 부패 등의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주변국인 파키스탄 이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의 대응과 움직임이 향후 아프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소 전 대사〓파키스탄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아프간에 거주하는 주민의 상당수가 파키스탄 국경을 넘나들며 생활할 정도로 두 나라는 밀접히 연관돼 있다. 탈레반 정권도 결국 96년 파키스탄의 지원으로 수립된 정권이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정권은 탈레반 정권과 연결을 끊기로 결심했다. 일부 파키스탄인들의 반미행동은 크게 위협적인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북부동맹은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탈레반 정권 타도를 바라고 있지만 이 또한 문제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도 북부동맹보다는 망명중인 자히르 샤 전 국왕과 유엔 평화유지군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이 교수〓미국은 아프간 내에서 탈레반과 대항할 유일한 세력이 북부동맹이기 때문에 별다른 대안 없이 지원하고 있다. 탈레반 제거라는 목표를 위해 미국은 누구와도 손잡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부동맹이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데다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초래된 일시적인 연대다. 과거 탈레반을 지원했던 사우디아라비아나 파키스탄은 북부동맹의 집권을 원하지 않는다. 탈레반 붕괴 이후 내전 상태 등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방 부장〓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가 이 지역에 다시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은 없는가.
▽소 전 대사〓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군사공격을 위한 발판은 우즈베키스탄이며 이곳은 사실상 러시아의 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미 러시아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러시아는 이번 사태를 적극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체첸 공격을 정당화하는 기회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방 부장〓미국은 이슬람 세계의 반발이 적은 일본을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 이슬람 세계에서 일본의 이미지는 어떤가.
▽소 전 대사〓아프간에서 가장 좋은 도로의 일부를 일본이 만들어줬으며 아프간인들은 이를 ‘일본도로’라고 부를 정도로 일본에 대한 아프간인의 이미지는 좋다. 이를 아는 미국도 일본 정부를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유럽에서 영국을 파트너로 삼았다면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파트너로 삼으려는 의도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활발한 움직임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시아를 담당한 파트너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이 교수〓정치와 무관하게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일찌감치 아랍권에 진출한 일본의 이미지와 위상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자본투자뿐만 아니라 일본은 이 지역에 많은 기술전수도 해줬다. 한국이 건설현장에만 파견돼 ‘건설 노무자’의 이미지를 갖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방 부장〓이번 테러 이후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본인은 문명충돌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런 시각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교수〓일부 과격세력이 극단적인 반미 정서를 표출하고 있지만 이슬람권의 주류는 대부분 테러 응징에 동조하고 있다. 테러 응징을 위한 미국에 대항하는 과격단체가 이슬람 전체를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빈 라덴의 제거 이후에도 전쟁이 계속 확대된다면 이번 전쟁은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다. 미국이 그런 악수는 두지 않을 것이다.
파키스탄인 일부가 격렬한 반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탈레반의 주류인 파슈툰족으로서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이를 이슬람 전체의 정서로 보기는 힘들다.
▽이 교수〓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이미 효력을 상실한 이론으로 본다. 90% 이상의 주류 이슬람은 심정적으로 반미정서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감정적인 차원의 대립보다는 현실을 인정하며 그 속에서 자기의 이해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소 전 대사〓아랍문제는 종교적 이념보다는 정치 경제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10월 2일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의 국가창설을 지지한다고 파격적 발표를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 발표로 이스라엘은 큰 충격을 받았다. 부시 정부는 정권의 존립차원에서라도 이스라엘과 자국내 유대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방 부장〓불행하게도 올해는 유엔이 정한 ‘문명간 대화의 해’다. 문명간 대화,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화 내지는 화해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소 전 대사〓이번 테러참사에 대해 미국인들이 겉으로는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떠들어댔지만 내부적으로는 미국에 대한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 불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해온 미국에 대한 경고로 이번 테러사건을 받아들이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교수〓제3세계 전역에 뿌리박힌 반미감정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미국인들이 마음놓고 해외여행도 못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빈 라덴과의 전쟁을 치른 후에도 테러의 재발을 막고 이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는 것뿐이다.
▼이-팔 문제 빨리 해결해야▼
아프간 공격을 위해 국제적인 연대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비용의 10분의 1만이라도 팔레스타인이나 아프간에 원조해준다면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테러방지대책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테러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진정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맞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사회도 이슬람 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동아일보가 올해초부터 연재한 ‘13억 이슬람과의 대화’ 시리즈를 계기로 현재 한국에서 이슬람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움직임이 생겼는데 이번 테러와 공습으로 한국 지식인측에서는 정말 이슬람을 올바로 알아야겠다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정리〓박윤철기자>yc97@donga.com
◇대담자 약력
이희수 교수
-1953년생
-터키 국립이스탄불대 역사학박사
-터키 튀니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년간 연구
-한양대 문화인류학 교수, 한국이슬람학회 회장
소진철 전 대사
-1930년생
-미국 오클라호마대 정치학박사
-주아프가니스탄 대사
-원광대 객원교수, 백제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