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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4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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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세계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가
파키스탄이다. 현재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는
세계 85개국의 취재진이 몰려 있다. 탈레반 정권이 취재진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자 유일한 수교국인 파키스탄으로 모여든 것.
탈레반 정권과 수교한 세 나라 중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테러 사태 이후 미국의 압력 아래 단교했다. 파키스탄만이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탈레반과 국교를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를 이슬라마바드 정책연구원 라피우딘 아흐메드 부원장(예비역 소장)은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인종적 이유로 탈레반의 주축인 파슈툰족이 파키스탄 서쪽, 아프가니스탄과의 접경지대에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 내 파슈툰족은 “국경선이 갈라놓았지만 우리는 형제”라고 주장한다. 페샤와르 퀘타 등 파슈툰족이 많은 도시에서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정부가 지원하면 정부를 상대로 싸우겠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둘째는 종교적 이유로 정부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슬람 단체가 탈레반을 지지하고 있으며 두 나라 모두 이슬람 수니파 신도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인 일반 국민 사이에도 ‘이슬람 형제국을 공격하는 미국 편을 들면 안된다’는 반미 의식이 강하다.
셋째는 외교안보적 이유로 파키스탄과 적대 관계인 인도가 탈레반과 내전중인 북부동맹 편을 들고 있어 자연스럽게 탈레반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은 이 같은 속사정 때문에 탈레반과 국교를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 테러 국제연대’를 앞세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전폭 지지’를 약속했다. 미군에 영공을 개방하고 기지도 사용할 수 있게 허가해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파키스탄의 협조 없이는 아프가니스탄 공격 작전이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이 핵실험을 강행했던 파키스탄에 가해온 각종 제재조치를 풀어준 데 대한 보답 성격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최근에는 탈레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3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거국 연립정권을 구성하는 것만이 아프가니스탄의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파키스탄의 협조 약속과 최근의 태도 변화 조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파키스탄에 대한 불신감은 뿌리깊다. 파키스탄 기지에 의존한 채 공격을 개시했다가 만일 파키스탄이 반미 시위 격화, 대정부 투쟁 등 국내사정을 들어 태도를 갑자기 바꿔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곤란해지기 때문.
파키스탄을 둘러싼 이 같은 복잡한 상황 때문에 미국은 파키스탄 기지를 사용하기는 하되 의존 비율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작전을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최근 들어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국의 구 소련군 기지 사용권 확보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작전 수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슬라마바드〓홍권희기자>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