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엔 분풀이 나서나 "체납분담금 내지 말자" 보복 검토

  • 입력 2001년 5월 10일 18시 33분


미국이 유엔 인권위원회 이사국과 마약통제위원회 위원국 선출에서 동시에 패배한 뒤 대응방안을 놓고 미 의회와 행정부가 맞서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의회 지도자들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지도력이 도전을 받았다’고 여겨 연일 유엔을 비난하며 보복을 다짐하는 반면 백악관과 국무부 등 행정부는 이성적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하원 국제관계위원회는 미국이 내년 인권위 이사국 선거에서도 탈락한다면 2004회계연도에 미국이 유엔에 낼 밀린 분담금 2억4400만달러를 내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 국무부 예산지출결의안 수정안을 10일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다만 미국이 올해 내기로 한 체납 분담금 5억8500만달러는 예정대로 지출된다.

헨리 하이드 위원장(공화) 등과 함께 이 결의안을 제출한 톰 란토스 의원(민주)은 “유엔 인권위 이사국에서 미국을 쫓아낸 조치는 무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의회 일각에서는 인권위 이사국 선거에서 미국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한 43개국 중 다른 국가에 표를 던진 14개 ‘배신국’을 색출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대두되고 있다.

미국은 3일 선거에서 유럽과 북미에 할당된 3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으나 29표를 얻는 데 그쳐 프랑스(52표) 오스트리아(41표) 스웨덴(32)에 밀려 1947년 인권위 창설 후 처음으로 이사국에서 탈락했다.

의회 움직임과 관련해 아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9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유엔인권위 선거 결과에 매우 실망하고 있지만 이 문제를 유엔 분담금 문제 등과 연계시키는 것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도 “유엔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다자기구와 협력하는 미국의 능력이 훼손될 것”이라며 유엔에 대한 의회의 보복 움직임에 반대 견해를 밝혔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미국이 이번 일로 189개 유엔 회원국 모두를 벌주려 하면 역효과를 내게 될 뿐”이라며 자제를 호소했다.

한편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이번 인권위 선거결과의 교훈은 유엔이 미국의 이해에 적대적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미국이 유엔에서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선 다른 나라들과 협조해야 한다는 점”이라면서 오만한 외교행태를 반성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일부 언론은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투표 결과를 비난하며 단호한 대응을 촉구하는 등 여론도 갈라져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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