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arts]세계를 정복한 '보통악기'

  • 입력 2000년 11월 21일 18시 35분


기타가 그토록 커다란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보스턴의 파인아츠미술관에서 내년 2월25일까지 열리고 있는 전시회 ‘위험한 곡선―기타의 예술’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기타는 이제 더 이상 단순히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계가 아니라, 많은 의미와 가능성을 지닌 물건이 되었다. 전자기타는 무모함, 현대화, 간신히 억제되고 있는 힘과 충동의 상징이 됐고 어쿠스틱 기타는 음유시인들의 낭만적인 전통을 이어받아 친밀함과 소박함을 약속해준다. 물론 색소폰, 바이올린, 피아노 같은 악기들도 나름대로의 의미와 상징들을 갖고 있지만 기타처럼 모든 것을 정복한 악기는 지금까지 없었다.

기타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이 악기는 코드를 세 개밖에 모르는 아마추어 연주자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훌륭한 음악을 연주하는 전문가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기타는 전세계 모든 음악의 형태를 결정하는 요인이며, 1994년에는 우주비행선 콜럼비아호를 타고 우주로 ‘진출’하기도 했다. 이번 보스턴 전시회에는 그 때 우주로 실려나갔던 것과 같은 기종인 마틴 백패커 미니 기타가 전시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기타의 운명이 적어도 400년 전에 정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부터 기타는 보통사람들이 조금만 연습을 하면 연주할 수 있는 소박한 악기였다. 그리고 그 소리와 형태의 본질은 바로 유연성이었다.

기타는 모든 악기 중에서도 연주자와 가장 친밀한 악기이다. 마치 사랑하는 애인처럼 연주자의 무릎 위에 놓이거나 가슴을 가로지르는 끈으로 고정되는 기타는 연주자의 양손에 의해 애무와 학대를 당한다. 그리고 연주자는 기타의 진동을 심장 바로 옆에서 느낀다. 무대 위에 선 로커에게 기타는 남근을 상징하는 무기가 되고, 포크가수에게는 화음을 이루는 파트너가 되며, 펑크 리듬 기타리스트에게는 음이 있는 드럼이 된다.

따라서 B B 킹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타에 루실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전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반면 빌리 조엘이 자신의 피아노에 이름을 붙이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위험한 곡선’ 전시회는 400년 동안 유럽과 미국에서 계속 개조되어온 기타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악기를 제조하는 장인들이라면 누구나 음향, 인체공학, 시각적인 미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기 마련이지만 기타 제작자들은 다른 악기 제작자들보다 더 실험적인 사람들이었다.

기타가 정확하게 스페인에서 처음 생겨난 것은 아니다. 공명실 위에 지판을 구획하는 플렛을 달아 손으로 뜯도록 돼 있는 악기는 전세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뉴 그로브 음악 사전’에 따르면 기타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악기들이 고대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 이집트, 중앙아시아 등지의 그림 속에 등장하고 있다.

스페인이 기타의 발상지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였다. 이 때 전 유럽의 악기 제작자들이 스페인에서 기타를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그들은 수백년에 걸쳐 기타의 재료와 공명실의 소리구멍 위치를 바꿔보고, 줄의 수를 달리해 보는 등 끊임없이 실험을 했다.

그 과정에서 전자기타가 등장하면서 기타의 소리는 마침내 물리적인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전자기타는 연주자의 손가락, 페달, 앰프 등이 어떻게 조정되는지에 따라 아주 다양한 소리들을 낼 수 있으며 실수를 통해 창의적인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놓았다. 록의 역사는 잘못된 연주가 오히려 훌륭한 소리를 낳았던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기타는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도 소박함을 계속 유지했다. 기타는 쾌활하고 맵시 있으며 유연하고 소박하다. 허세를 부릴 줄도 알지만 손님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줄도 안다. 따라서 기타가 그토록 오랫동안 파티에서 즐겨 연주되었던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http://www.nytimes.com/2000/11/12/arts/12PARE.html)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