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세계화는 곧 미국화" 덴마크 필립슨교수 주장

  • 입력 2000년 11월 10일 19시 12분


영어는 중립적인 세계어인가. ‘영어 공용화론’까지 거론되는 요즘, 영어가 중립적 언어라는 주장은 그 안에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간과한 위험한 신화가 아닐까.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주최로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동아시아의 세계화와 언어 제국주의’ 심포지엄에서 덴마크의 로버트 필립슨 교수(코펜하겐 경영대·사진)는 “영어의 세계화란 소비 문화, 가치관, 일상 생활 패턴의 미국화를 의미한다”며 영어가 중립적인 언어라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식민시대 언어의 예속은 후기 식민주의 시대를 맞고 있는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는 경향”이라고 지적했다. 유엔같은 국제기구에서 영어가 압도적 패권을 갖고 있는 것이 이러한 언어의 서열화에 대한 단적인 예라는 것.

이같은 영어의 세계화는 아무런 인위성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난 ‘언어 확장’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의 이익 추구 결과다. 필립슨 교수는 “코카콜라, CNN,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영어를 사용하여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을 통해 국가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영어 중심의 세계 소비 문화 단일화 현상이 생겨났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형성된 영어의 헤게모니는 언어의 ‘이미지’와 직결되어 영어는 ‘성공’ ‘국제적 자율성’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를 갖고 전략적으로 판촉된다.

그는 “모든 언어는 동등한 가치가 있고 각각의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곧 인권”이라며 “언어 제국주의에 맞서 다국 언어주의, 고유 문화의 육성과 교류, 세계 물적 자원의 재분배 등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필립슨 교수는 92년 옥스퍼드대 출판부에서 출간된 ‘언어제국주의’의 저자로 9일 한국 정치사상학회 주최로 서강대에서 열린 콜로키엄에서도 같은 요지의 주제 발표를 했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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