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소년 죽음' 충격]"비무장 父子에 총탄 퍼붓다니…"

  • 입력 2000년 10월 2일 18시 46분


‘아이는 공포에 질려 아빠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총탄이 머리 위를 스쳐 건물 콘크리트 벽에 박혔다. 그 벽에 기대 쭈그려앉은 아버지와 아들. 아이가 있으니 쏘지말라는 아버지의 절규. 잠시 후 아버지와 아들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팔레스타인 소년 라미 자말 알두라(12)가 변을 당한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유혈 충돌이 벌어진 지난달 30일. 라미군은 이날 아버지 자말 알두라(37)와 함께 중고차 시장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르지 못하고 걸어서 가자지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다가 시위대와 이스라엘 진압군을 맞닥뜨렸던 것.

라미군은 이스라엘군이 쏜 것으로 보이는 총탄을 배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고 아버지 알두라씨는 팔다리와 몸에 총상을 입고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했다.

부자의 안타까운 장면은 마침 부근에 있던 프랑스 2TV의 카메라에 잡혔다. 그 화면이 방영되자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전 아랍인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30일 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국자들이 휴전협상을 벌이는 등 진정기미를 보이던 충돌 사태는 1일 날이 밝으면서 더욱 격화했다. 아메드 케레이아 팔레스타인의회 의장은 “세상에서 인간이 목격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장면”이라며 이스라엘을 맹비난했다. 라미군의 어머니 아말(34)은 “언젠가 라미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며 통곡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은 이스라엘과의 분쟁이 생길 때마다 거리에서 어른들과 함께 돌을 던지며 적개심을 키우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이스라엘측은 “진상조사를 벌이겠다”면서도 “팔레스타인측은 어린이들이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내버려두거나 심지어 조장하기까지 한다”며 책임을 팔레스타인측에 돌렸다.

친척들에 따르면 실제로 라미군도 종종 다른 아이들과 함께 이스라엘군을 향해 돌을 던지곤 했다. 라미의 어머니는 이날도 무력충돌이 발생하자 아들이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버지와 중고차 시장에 다녀오라고 권유했던 것.

이스라엘측은 이번 사건으로 이스라엘이 잔학하고 비도덕적인 집단으로 비쳐질까봐 우려하는 모습이다.

야르덴 바티카이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경우에만 무기를 사용한다”면서 “이번 사건은 팔레스타인측의 오인발포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라미군 이외에도 이번 충돌로 가자지구 남부 라파지역에서 10세 소년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뇌사상태에 빠졌으며 요르단강 서안의 나블루스에서는 7세 소년이 가슴에 유탄을 맞고 숨졌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