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모리 "내년 7월 사임"…조기퇴진-대선약속 번복

  • 입력 2000년 9월 21일 00시 08분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이 사흘만에 사실상 사임 의사를 번복함에 따라 페루 정국이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19일 저녁 페루의 전통적인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7월28일까지는 대통령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16일 야당의원 매수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여론이 들끓자 사임을 강력히 시사했던 발언을 사실상 번복한 것이다.

후지모리 대통령의 이날 번복 선언은 새벽에 군사령부를 다녀온 다음에 이뤄져 군부의 지지를 약속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지모리의 독재정권을 강력히 비판해온 야당이 크게 반발할 것으로 보여 페루 정국은 당분간 혼미를 거듭할 전망이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궁에서 가진 회견에서 “조기총선 발표는 즉각 사임한다는 뜻이 아니었다”고 발표했다. 후지모리는 이어 “현재 페루에는 권력공백이 없다”며 “페루는 안정되고 조용하며 언론자유가 보장돼 있다”고 말했다.

16일 사임발표 뒤 이날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지모리는 대통령궁의 정문 꼭대기에서 영부인 역할을 하고 있는 딸 케이코(25)와 함께 페루 국기를 흔들며 지지군중들에게 답례했다. 추종자들은 일제히 “사임 반대”를 외치며 환호했다.

후지모리는 또 야당의원을 매수한 국가정보부(NIS)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국가정보부장 처리문제와 관련해 “그가 실수는 했지만 테러와 마약과의 전쟁에서 공헌이 많다”고 두둔했다. 이같은 발언으로 미뤄볼 때 그에 대한 사법처리도 흐지부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군부대에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던 몬테시노스 부장의 거처와 관련해 후지모리는 “그가 리마에 있다”고만 밝혔다. 이에 앞서 후지모리 대통령은 이날 새벽 리마교외의 군사령부를 방문했다가 15분만에 대통령궁으로 돌아왔다. 관측통들은 후지모리 대통령이 한동안 동요하던 군부가 후지모리지지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보고 있다. 5월 대선에서 접전을 벌이다 막판에 부정선거를 이유로 사퇴한 알레한드로 톨레도 등을 비롯한 야당 지도자들은 이에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톨레도는 방미 도중 급거 귀국해 후지모리의 즉각 사임과 비상 과도정부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후지모리대통령은 몬테시노스 부장이 야당의원을 매수하는 장면이 담긴 녹화테이프가 공개된 16일 새로운 선거를 조기에 실시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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