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핵잠함 승무원 전원사망]가족들 오열…실신…

  • 입력 2000년 8월 22일 01시 07분


‘혹시나’ 하는 기대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던 러시아 핵 잠수함 쿠르스크호의 구조작업은 비극으로 끝났다. 러시아 당국은 21일 승무원 118명의 전원 사망을 확인하면서 선체 인양과 원자로 회수 작업을 위해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원 사망의 비보가 전해지자 북해 함대 기지인 무르만스크에 모여 무사귀환을 기도했던 가족들은 오열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고가 난 12일 이후 러시아 전역에서 무르만스크에 모여든 승무원 가족들은 ‘전원 사망 소식’을 전해듣고 절망했으며 일부는 정신을 잃고 혼절,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러시아 국영 RTR TV와 민영 N―TV는 21일 오후 5시(한국시간 밤 10시) 승무원 전원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애도 음악을 내보내고 승무원 명단을 공개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유족 지원금을 당초 책정한 금액의 3배인 150만루블(약 5900만원)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정부 사고조사위원장인 일리야 클레바노프 부총리는 이날 “아직 7번과 8번 선실은 침수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여운을 남겼지만 “사고 잠수함 인양을 위해 인양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해 승무원 구조작업은 사실상 포기했음을 시사했다. 클레바노프 부총리는 “인양작업은 주교(舟橋)용 선박을 이용해 이뤄질 것”이라면서 “인양 대책 마련을 위한 첫 회의는 23일 소집할 것이며 인양 계획은 이로부터 3주후에나 마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정부 조사위원회는 쿠르스크호가 외부의 움직이는 물체와 충돌한 뒤 침몰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 물체가 대형 잠수물체인지 기뢰인지는 앞으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측은 이번 구조작업을 도왔던 노르웨이의 민간회사에 시신 인양 작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민간회사 관계자는 “러시아측 요청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밝혔으나 실제로 시신 인양 작업을 시작할 것인지는 직접 작업을 담당할 잠수부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한 소식통은 시신 인양 작업을 마치려면 적어도 한 달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다른 소식통은 심해에서 이뤄지는 만큼 시신 인양 작업이 매우 위험해 착수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휴가를 마치고 크렘린으로 복귀, 이고리 세르게예프 국방장관으로부터 구조작업 상황을 보고받은 데 이어 크렘린 관계자 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군사기밀 보호 등을 위해 지난 주말까지 외국에 대해 지원 요청을 거부한 것이 승무원의 조기 구출을 어렵게 했다는 지적이 러시아내에서 나오면서 푸틴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여기에다 푸틴 대통령이 쿠르스크호 침몰 직후 대다수 승무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음에도 이를 은폐했다는 보도까지 나와 그를 코너로 몰고 있다.

군 관련 통신인 AVN은 이날 군 고위 소식통을 인용, “푸틴 대통령이 사고가 발생한 12일 흑해 연안 휴양도시인 소치에서 블라디미르 쿠로예도프 해군대장으로부터 사고 잠수함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받았으며 승무원 대부분이 사망했다는 사실도 그때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쿠르스크호 침몰 사실은 14일에 가서야 일반에 공개됐다”면서 “크렘린이 이미 대다수 승무원이 숨진 사실을 확인하고도 생존자가 있을 수 있는 것처럼 국민을 기만했다”고 덧붙였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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