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8회동 참석표정 대조적]허탈한 클린턴, 의기양양 푸틴

  • 입력 2000년 7월 20일 18시 55분


21일부터 일본 오키나와(沖繩)에서 열리는 서방선진 7개국과 러시아의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의 표정이 180도 다르다. 클린턴 대통령이 ‘빈손’에 무거운 마음으로 일본땅을 밟는 반면 푸틴 대통령은 얘깃거리가 잔뜩 든 보따리를 들고 당당하게 강대국 정상들을 맞게 됐다.

미―러 두 정상은 이번 정상회의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치열한 워밍업을 했다. 내년 초 퇴임하는 클린턴은 미국대통령으로서는 마지막인 이번 G8 정상회의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5월 취임한 푸틴 대통령은 각광을 받으며 ‘강대국의 사교클럽’에 데뷔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클린턴의 카드는 중동평화협상.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클린턴은 평화협정 체결 시한(9월13일)을 앞둔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캠프데이비드로 불러들였다. 캠프데이비드는 78년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역사적 평화협정을 체결했던 곳.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 타결은 중동평화 정착을 위한 결정적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취임 후 6년 동안 중동문제에 공을 들여온 클린턴 자신에게도 대단한 업적이기 때문에 도전해볼 만한 상대였다.

그러나 클린턴은 시간에 쫓겨 너무 조급하게 남의 나라의 ‘내정’에 간섭한 꼴이 됐다. 78년 협상 당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독려 속에서도 팽팽한 대결을 계속하다 무려 13일 만에 대타협을 이뤄냈다. 이번에는 그만큼의 시간도 없었다. 클린턴은 G8 정상회의 참석을 하루 미루면서 협상을 독려했으나 9일간의 대좌에서 얽히고 설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실타래를 풀기는 무리였다.

참담한 심정으로 일본에 도착할 클린턴은 또다른 시련을 겪어야 한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미군주둔에 항의하는 갖가지 항의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데다 러시아 중국 등의 정상들이 일제히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구축에 반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난감한 상황이다.

반면 푸틴은 성공적인 워밍업을 통해 완전한 회의 준비를 했다. 푸틴도 클린턴처럼 G8 정상회의를 앞두고 돋보이는 카드를 꺼냈다. 중국(18∼19일)과 북한 방문(19∼20일)이 그것. 푸틴은 중국에서는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과 NMD에 반대한다는 공동선언을 만들어냈다. 푸틴은 또 8개국 정상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만났다는 우월적 지위를 활용,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한 발언권을 갖게 됐다. 미―러 지도자들의 엇갈린 처지는 정상회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에 새 대통령이 등장할 때까지는 한반도나 NMD 등 주요 이슈에 대해 미국이 수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방형남기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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