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55세 간부 '나이차별'해고 반발 소송

  • 입력 2000년 5월 30일 19시 47분


벤처기업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나이 든 사람의 반란’이 시작됐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해고된 55세 간부가 ‘나이 차별’을 이유로 소송을 낸 것이다.

미 LA타임스지는 실리콘밸리의 오라클 부회장직에서 2월 해고된 랜디 베이커(55)가 회장인 래리 엘리슨과 회사측을 상대로 나이 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최근 전했다. 아이디어와 능력만 있다면 무조건 환영받는 곳으로 알려진 실리콘밸리가 이제 벤처기업의 연륜이 깊어지자 나이가 든 사람을 냉대하는 ‘나이 차별’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베이커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나이 든 사람 모두가 ‘나이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소송을 냈다”고 밝혔다. 베이커는 갑자기 해고당하는 바람에 스톡옵션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 손해를 보았다며 1850만 달러의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오라클 측은 그가 93년 48세에 오라클에 입사한 뒤 승진을 거듭해 온 점을 들어 ‘나이 차별’ 주장은 가당치 않다고 반박했다.

나이 든 사람에게 직장을 알선하는 회사 운영자인 빌 페이슨은 “흰머리 때문에 해고될 것이라는 비관 혹은 공포 분위기가 실리콘밸리에 팽배하다”고 말했다.

새너제이 지역의 노동인권 변호사인 스티브 콘도 “근로자의 노령화와 회사의 재정 압박 등으로 ‘나이 차별’은 실리콘밸리의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샌타클래라, 샌머테이오, 샌프란시스코 등 실리콘밸리 주변에서 제기된 ‘나이 차별’ 사례는 450건에 이른다.

은퇴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랠프 베인(68)은 “나이 든 사람이 이력서에 나이를 제대로 써넣는 것은 입사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나이 든 사람을 푸대접하는 실리콘밸리의 세태를 비판했다.

전문직 종사자인 베인은 5년 동안 시간제 일자리를 찾았지만 “면접하는 이들은 내 흰머리를 보기만 하면 설렁설렁 면접을 끝내 버렸다”고 말했다. 채용할 수 없는 이유로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결국 나이 때문에 취업을 할 수 없었다고 그는 믿고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 피부과병원 의사들은 “얼굴 주름살이 장래를 결정한다고 생각해 성형수술을 하러 오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 차별을 명백히 밝혀 내기는 쉽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의 골든게이트대 법대 교수 오펜하이머는 “경영주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을 해고한 것은 젊은 인력에 비해 인건비가 많이 나가기 때문이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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