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라이프誌 '전설속으로'…복간 8년만에 終刊

  • 입력 2000년 5월 2일 19시 19분


미국에서 사진저널리즘의 새 지평을 열었던 잡지 라이프가 1일 종간호인 5월호를 발행했다.

모기업인 타임워너의 냉정한 결정에 따라 전설 속에 사라지게 된 라이프는 5월호 표지에 ‘너무 일찍 태어났다(Born Too Soon)’는 제목과 함께 조산아의 사진을 실었다.

라이프는 1936년 11월23일 주간지로 창간됐다가 72년 휴간에 들어갔다. 다시 20년 뒤인 92년 월간지로 복간됐다.

라이프는 표지 사진을 통해 복간된 지 8년만에 종간을 맞게 된 상황을 비유하려 한 것일까. 사실은 64년전 창간호의 표지 사진과 대비하려는 의도적 편집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라이프는 ‘라이프가 시작됐다(Life begins)’는 제목과 함께 거꾸로 선 신생아의 사진을 실었다. 64년도 안돼 죽게 됐으니 조산아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뜻을 담은 것이다.

종간호에서 라이프는 베트남 여인 트론(43)의 사진을 실었다. 트론은 31년전 라이프를 통해 세계에 알려진 베트남전 비극의 주인공. 미군 헬기의 기총 소사로 오른발을 잃은 12세 소녀 트론의 모습은 미국인들을 울렸다.

라이프의 사진기자 래리 버로즈가 트론을 촬영했었다. 9년간 종군기자로 활약한 버로즈는 71년 헬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버로즈는 사망할 때까지 트론을 돌봐줬다. 사진을 보고 보내온 성금으로 트론에게 의족을 달아줬으며 재봉틀을 구입해 먹고 살 길도 마련해줬다.

이번에 성장한 트론을 촬영한 기자도 버로즈의 외손녀 사라였다. 트론은 사라에게 “버로즈는 아버지 같은 분이었으며 내게 삶을 되찾아줬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자들은 라이프를 통해 삶을 새로운 눈으로 응시할 수 있었다. 알코올중독자인 10대에게 하프를 가르치는 여인, 공산당 비밀경찰에 총격을 하는 헝가리 반군, 에이즈로 생명을 잃어 가는 10대 흑인소녀, 자궁 속의 태아를 찍은 최초의 사진,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장면 등의 역사적 순간들이 라이프를 통해 기록됐다.

저명한 사진기자인 해리 벤슨(70)은 워싱턴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잡지가 유명 연예인의 진한 화장기 얼굴로 도배질하고 있는 이 때 진정한 삶을 다룬 유일한 잡지를 없앨 수 있느냐”며 분노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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