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KAL 괌事故 유족 등 13명에 3000만달러 합의금

  • 입력 2000년 3월 17일 06시 59분


97년 8월 발생한 대한항공(KAL) 801편 괌 추락사고의 부상자와 사망자 유족 13명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미국 정부가 소송 취하의 조건으로 이들에게 3000만달러(약 340억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가 KAL사고 희생자들에게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인 부상자와 유족 13명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미국 ‘스턴스 앤드 워커’ 로펌(법률회사)의 대표인 제럴드 스턴스변호사는 16일 미국 정부측 변호사들과 원고들이 서명한 합의서(권리포기서)를 공개했다. 합의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한국인 원고들이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원고 1인당 50만∼500만달러씩 모두 3000만 달러를 지급하게 된다.

스턴스변호사는 이 합의서가 미국 법무부의 승인을 받으면 바로 합의금이 지급되며 미국 법무부의 승인은 2개월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괌 추락사고와 관련해 사망 및 부상자는 모두 254명으로 이들 피해자중 100여명은 대한항공으로부터 1인당 2억5000만원 정도의 위자료 등을 받고 합의했다.

나머지 부상자와 사망자 유족들은 대한항공과의 합의를 포기하고 사고가 난 괌 공항 관제탑의 오(誤)작동 등을 이유로 괌 공항을 관할하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대한항공측과 합의한 피해자들은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합의금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 정부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다고 스턴스변호사는 말했다. 스턴스변호사는 “미국 정부가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향후 재판이 계속 진행될 경우 미국 정부가 승소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턴스변호사는 그러나 미국 정부가 합의금을 지급하는 것이 바로 KAL 추락사고에 관한 미국 측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스턴스변호사는 “미국 정부는 일단 원고들에게 합의금을 지급하고 대신 대한항공을 상대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법원에 구상금 청구소송을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AL기 추락사고의 책임소재는 앞으로 진행될 미국 정부와 대한항공측의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가려질 것이며 법원에서 결정하는 책임비율에 따라 양측의 배상액이 결정될 것이라고 스턴스변호사는 말했다. 이와 관련해 스턴스측과 함께 이번 소송을 수행한 국내 법무법인 ‘대륙’의 김대희(金大熙)변호사는 “미국 정부가 향후 대한항공과의 소송에 대비해 합의서에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합의금을 서둘러 지급한 것 자체가 어느 정도의 책임은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스턴스변호사도 “미국 정부의 책임이 일부 인정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지난해 11월 KAL기 추락사고의 원인은 기장의 과실과 괌공항 관제탑의 최저안전고도 경보장치의 작동중단과 경보장치 관리 실패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다.

<이수형·김승련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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