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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2월 31일 21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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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은 우선 훌륭한 인물이 있기 때문에 굳이 6개월여 남은 임기를 채울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그가 후계자로 지명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정국을 잘 이끌고 있기 때문에 건강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레임덕 대통령으로 새 천년 초반을 맞기 싫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옐친은 “러시아는 새 밀레니엄을 새 지도자와 함께 해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에 따라 옐친의 전격사임은 현재로서는 권력투쟁에 의한 퇴장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입장을 고려한 그의 자발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사실 그동안 옐친을 짓눌러온 고민은 ‘안전한 퇴장’이었다. 6월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정적이 당선되기라도 한다면 그동안의 권력남용과 측근의 부패 등에 대한 단죄를 각오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옐친이 지난해 후반기부터 건강이 더욱 악화돼 대통령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이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대통령 취임 후 지난해초까지 이미 13번이나 입원해 국가수반으로서는 가장 많이 입원한 사람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옐친에게는 지난해 8월 푸틴을 총리로 기용한 것이 마지막 행운이었다. 옐친은 집권 초기부터 위기에 빠질 때마다 총리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구소련 정보기관 출신으로 무명에 가깝던 푸틴은 곧바로 국정을 떠맡았고 옐친은 지난해 9월부터 지병인 심장병과 몸살 감기 등으로 2차례 입원한 후에는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99년 12월 실시된 총선에서 푸틴이 사실상 지휘하던 친(親)옐친계 우파 정당들이 크게 약진함에 따라 옐친은 더욱 확실한 안전판을 얻게 됐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