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라 가즈오 주한日대사에 듣는다]

  • 입력 1999년 2월 2일 19시 28분


《어느 주한외국대사는 한일관계를 가리켜 “뷔페장에서 신사복 차림으로 만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외형적일 뿐 진실한 협력관계가 적다는 뜻으로 설명하면서 한 말이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발생하는 상황은 상대국에 민감한 영향을 준다. 특히 경제 군사기류와 북한문제에 대해 그렇다. 북한의 핵의혹과 미사일 문제, 일본의 전력증강 움직임, 일본경제의 침체와 한국의 경제위기 등 많은 분야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최맹호국제부장이 오구라 가즈오 주한 일본대사를 만나 양국관계의 전망을 들어봤다.》

―21세기에는 한일 양국간의 진정한 동반자관계가 정말 필요한 시기입니다. 더구나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라는 구체적인 ‘협력의 호재’도 있습니다. 진실한 동반자관계를 열기 위해 지금 필요한 일은 어떤 것일까요.

“먼저 양국 젊은이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켜야 합니다. 한국에는 일본을 잘 아는 젊은이가 많지 않고 일본에서도 한국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면 진실한 21세기 파트너십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양국간 청소년 교류가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공동으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가령 환경호르몬이나 산성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연구할 수 있습니다. 뭔가 목표를 정해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년 10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와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행동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요.

“정부와 경제계 등 민간에서 할 일로 나눠봐야 합니다. 가령 정부간에는 환경문제 등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민간에서는 한국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經團連)에서 새 그룹들이 생겨나 교류하고 있습니다. 문화 청소년 부문에서는 한일 양국간 보이스카우트 교류 등을 추진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은 작년 일본의 대중문화를 일부 개방했습니다. 아직 반대여론도 있고 일본영화도 상영되긴 했지만 반응이 높지 않았지요.

“대중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를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로 나누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입니다. 가령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 전까지는 대중문화였다가 지금은 고전이 됐고 베토벤도 처음에는 그렇게 고전이지 않았어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를 나누는 사고방식으로는 문화가 풍부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식인들이 실체가 없는 것을 두고 벌이는 공허한 논쟁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 日 ‘北미사일’ 정보 갖춰 ▼

―작년말 일본정부와 언론 일각에서 ‘한반도 위기론’을 제기했습니다. 일본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독자적인 정보를 갖고 있는지요.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정보를 많이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사일에 대해서는 실제로 미사일이 날아왔을 때 추적하는 등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어느 정도 분석 및 정보수집능력이 있습니다.”

―일본의 대북한정책의 기본은 어디에 있습니까.

“대북한정책은 억지력이 필요하다, 경계심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한미양국과 기본적으로 일치합니다. 또 장기적으로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북한과 교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전략도 일치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국민감정입니다. 일본에서는 미사일 발사와 납치의혹 등으로 북한에 대한 국민감정이 아주 차갑습니다.”

―한미일 3국의 입장차이를 메우는 방법은….

“일본과 북한이 대화의 자리를 만드는 게 하나의 방법입니다. 일본에 대한 북한의 ‘좋은 신호’가 전혀 없어서는 안될 겁니다. 또 하나는 중국과 러시아로 하여금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간여토록 하는 것입니다. 북한을 설득하는 데는 국제여론의 힘이 큽니다. 한미일 3국만으로는 북한을 설득하려 해도 이념 차이로 인해 대립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북한과 전통적으로 우호관계에 있는 러시아와 중국같은 나라가 북한을 설득하는 게 중요합니다.”

―왜 북한은 일본에 ‘좋은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고 보시는지.

“북한의 전술입니다. 북한에 제1은 미국이고, 제2가 한국입니다. 일본은 고립시키려 하지요. 한미일 공조에 쐐기를 박으려는 것이지요. 북한에 일본을 잘 아는 전문가가 없다는 것도 한 이유인데 이는 조총련이 역할을 잘 못하고 있다는 얘기와도 관련됩니다. 북한의 대외 위협정책은 힘이 없기 때문에 취하는 겁니다. 때문에 체면이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최근 일본의 군비증강조짐을 주변국에서 우려하는데요.

“그동안 미일 안보체제는 마치 집은 세웠는데 지붕이 없다든지 지붕은 있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는 상황과 같았습니다. 또 일본 내에서 미일안보태세에 대한 관념적인 지지만 있었지 진정한 지지가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 2∼3년 일본에 대한 북한의 태도와 대만해협 사태 등을 지켜보면서 일본 국민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사태에 불안을 느낀 국민이 미일안보체제를 실효성이 있도록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미일이 새 가이드라인에서 정한 ‘주변해역’에 대만해협이 포함되느냐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어느 지역이라고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가령 남중국해나 인도양, 태평양의어디까지라고지리적으로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보통은 넓은 의미에서의 아시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천황 한국방문 시간걸릴듯 ▼

―일본의 경기 회복 조짐은 어떻습니까.

“이제 바닥을 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어요. 최근 2∼3개월간 아파트 분양이 호전됐고 가전제품의 판매도 나아졌습니다. 설비투자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지만 소비는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연말이나 내년에는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예상이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공업생산 즉 반도체나 승용차 생산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서 앞으로 원화가 안정되고 세계경제가 붕괴하지 않으면 올해는 플러스 성장을 할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국제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대장상이 작년 9월 아시아국가들에 대해 3백억달러의 자금지원을 발표했지만 실행이 늦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연되면 일본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단계적으로 할 것입니다. 먼저 아시아각국의 중앙은행과 재무성들 사이에 연락협의체계를 강화하고 일본 시장을 보다 자유화시켜 엔의 국제화를 촉진시킨 후 제2단계에서 상호자금제공 등 국제적인 조정이 이뤄질 것입니다.”

―엔화의 국제화와 관련해 일본은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을 계속 추진할 건지요.

“각국이 엔화를 국제자산으로 보유토록 하기 위해서는 엔화의 국제화가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천황방문은 언제 이루어질 것 같습니까. 천황 방문이 양국에 어떤 도움이 될지.

“먼저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양국 정부가 아무리 애써도 국민감정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한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정리〓이종환기자〉ljhzip@donga.com

[21세기한일파트너십행동계획]

▽정치분야〓양국 대화채널 확충, 연례정상회담 및 각료간담회 개최/국제평화 안전을 위한 협력/국제연합내 일본 위상 지원/한일방위교류 및 대북정책협의 강화/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한국개최 지원

▽경제협력강화〓한국에 30억달러 지원/한일 이중과세방지협약 체결/아태 초고속 정보통신 선도시험망 공동연구/노사정 교류 활성화/경제인교류 확대

▽범세계문제 협력강화〓환경문제 공동연구/원자력 평화이용 증진/범죄인 인도조약 체결교섭/마약 등 국제범죄 공동대처

▽국민교류 문화교류 증진〓2002년 월드컵 성공적 개최/사증절차 간소화/유학생 공동 파견/역사 공동연구 등 학술교류 증대/문화교류 확대

[오구라 가즈오 日대사 약력]

△1938년 생 △62년 도쿄대 법학부 졸업, 외무성 근무 △64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졸업 △78∼89년 외무성 북미제2과장, 동북아과장, OECD공사 △경제국 심의관, 관방문화교류부장 △92년 외무성 경제국장 △94년 주베트남 대사 △97년 주한 일본대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