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 면책특권 不인정]「독재자단죄 국경없다」확인

  • 입력 1998년 11월 26일 07시 41분


영국 최고법원인 상원의 5인 재판부가 25일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면책특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피노체트가 스페인으로 넘겨져 재임중 저지른 만행에 대해 심판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영국의 이번 결정은 반인류범죄를 저지른 자는 국경에 관계없이 처벌해야 한다는 세계의 추세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반인류범죄에는 시효가 없다는 사실도 재확인됐다.

스페인인을 포함해 수만명을 살해 고문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노체트가 스페인에 넘겨질 경우 중형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상원이 칠레와의 외교적 갈등을 무릅쓰고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은 국제사회의 여론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지난달 28일 런던고법이 “피노체트를 구금한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소심이 형식적 절차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해왔다. 그러나 “영국은 국제윤리를 저버렸다” “국익 앞에는 선과 악의 구분도 없느냐”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진데 이어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 피노체트를 법정에 세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상원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 상원은 예정보다 20일이나 늦게 1심을 뒤집는 판결 결과를 발표했다.

상원이 피노체트의 면책특권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자동적으로 스페인에 넘겨지는 것은 아니다.

신병인도 여부는 잭 스트로 영국 내무장관의 결정에 달려있다. 법절차에 따라 스트로장관은 다음달 2일까지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연기도 가능하다. 스트로장관은 우선 법원에 스페인의 신병인도요청에 대한 타당성을 심사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심사결과 법원이 신병인도요청을 받아들이면 스트로장관이 최종적으로 인도여부를 결정한다.

그렇게 될 경우 스트로장관은 신병인도와 석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신병인도 결정은 면책특권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트로장관이 칠레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피노체트가 고령(83)이고 지병이 있는 등 인도적 정황을 고려하게 되면 석방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이 경우 피노체트는 귀국이 가능해진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 피노체트 관련 일지 ▼

10월17일〓피노체트, 런던 경찰에 전격 체포

28일〓런던 고법, 피노체트 면책특권 인정

11월2일〓프랑스, 피노체트에 대해 체포영장 발부

3일〓스페인, 신병인도요청서 재제출. 스위스, 피노체트에 대해 체포영장 발부

11월4일〓상원 5인재판부, 항소심 재판시작

11월25일〓상원 5인재판부, 항소심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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